본문 바로가기
관계와 걸음 — 조심스러움과 용기

그가 왔다-2nd day

by 발비(發飛) 2026. 2. 15.

당일로 서울 약속을 다녀온다고 했다. 

옛 직장동료들, 친구들 몇개의 바쁜 일정이라고 했다. 

 

저녁에 전화가 왔다. 

삼십 분쯤 일찍 도착할 것 같다고, 아홉시쯤 맥주 한잔을 하자고 한다. 

진도를 나간 김에 술 한잔도 해보자는 말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직 한번도 그런 자리가 없었으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집 근처로 약속을 잡았다. 

 

첫 맥주타임이었다. 

 

나도 꽤 오랫만에 맥주를 마시는 거였다.

무알콜로 마신 지가 몇년째인데, 얼른 꽤 많이 마셔봐야겠다 싶었다. 

 

그는 앉자마자 취하기 전에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 살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본인의 금전적인 상황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두 손을 저으며 그 이야기는 알고 싶지 않다고 일단 말하고. 

맥주 한 병을  빠르게 마셨다. 

그리고 전날 차 안에서 나눈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노모와 시간을 보내는 그림 속에 내가 함께 있었던 것,

그가 얻어야 할 집에 내가 감안이 되는 것,

그리고 한두 개 더.

 

나는 둘의 관계에서 가족이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귀향 그림 속에 나때문에 계획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게 맞지만, 

손을 잡는 것이 어색하고,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서로의 속도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마치 저자를 만나듯 긍정과 부정의 경계에서 표정을 짓고 말을 하고 있었다.

일처럼 관성적으로 행동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선언같은 말에 그는 적잖이 놀라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특유의 차분하고 다정함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였으므로 새로운 출발선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새로운 시작이니까.

 

술이 살짝 올랐을 때 손을 내밀어 다시 그의 손을 잡아보았다. 

술을 마셨는데도 여전히 그의 손이 어색했다. 

이것이 연애세포가 죽은 나이 문제인 것도 같고 호르몬의 문제이기도 한 듯 했다. 

술이라는 마중물을 들이 부어도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와 멀리서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앞에 앉은 그를 보며 외모도 그 나이의 다른 남자들보다 훨씬 관리가 잘 되어 내가 차라리 걱정인데, 뭐지 싶었다. 

 

그럼에도 한쪽 마음에서 시간이 걸리고 애를 써서라도 외롭게 늙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의지가 생기기도 했다. 

의지가 생기려면 어떤 여지가 필요한 거 아닌가.

그래서 손을 잡아서 내 마음에 얼마만한 여지가 있는지 체크해보고 싶은 거였다. 

 

마음을 일으키고 싶었다. 

 

열두시가 다 되어 술집을 나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집까지 걸었다. 

잡을 손이 없다며 장난인 듯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를 흘낏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 입맞춤을 했다. 

또 한 번 입맞춤을 했다. 

 

그는 다음날 전화에서 너무 설레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입맞춤으로 그에 대한 내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게 되었다.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고, 확인하게 되었다. 

입술이 닿는 것만으로도 확인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그를 시험한 것은 아닌가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그와 보내는 시간이 싫지 않고,
그의 다정함이 고맙다.


그런데, 그가 말한 설렘의 온도만큼은 아직 내 안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내 마음을 조금 더 지켜보려고 한다.

 

손을 잡아도, 포옹을 해도, 입맞춤을 해도, 술을 마셔도 가슴이 뛰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나 나눈 말처럼 베스트프렌드이던, 저스트프렌드이던 

할 건 다 해보고

흘러가는대로 만들어진 관계대로 살아가자 싶은 마음이다. 

 

참 이상하긴 하다. 

 

'관계와 걸음 — 조심스러움과 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어지고 있다  (0) 2026.02.26
내가 경험한 나  (0) 2026.02.16
그가 왔다-1st day  (0) 2026.02.15
그가 온다  (0) 2026.02.11
일상 복귀  (0) 2026.02.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