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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걸음 — 조심스러움과 용기

나는 친구를 선택했다

by 발비(發飛) 2026. 2. 27.

나는 그를 친구로 두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라기보다 아는 사람으로 남기기로 했다.

더 깊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마음을 열었더라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나를 자신의 세계로 들이고 싶어 했고, 나는 그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를 선택했다.

더 깊어지면 외로울 것 같아서.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처음에는 막연히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핵심이 아니다.

취미도, 살아온 경험도, 관계의 결도 달랐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드라마를 보고 '재밌지?'에서 멈출 것 같았다.

스포츠는 나만 볼 것 같았다. 
스포츠를 볼 때의 흥분을 허공에 날리는 헛헛함을 상상한다.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 다정하기로는 한 손에 꼽힐 정도인데다가
세상의 기준으로 봐도 괜찮은 사람이다. 

 

그는 나와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이었다. 

 

이번 연휴에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조금씩 말이 줄었다.
감정은 저절로 절제하게 되었고 되도록이면 간단히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말을 많고, 

웃음이 많고, 

쓸데없는 말장난을 좋아하고,

희한한 아이디어가 아무 때나 떠오르는 걸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또 상대의 말에 미친 듯이 반박하고, 또 춤추듯이 공감하며,
가끔은 내가 아닌 듯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나를 내가 가장 좋아한다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엄청난 태풍 앞에 선 것처럼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생각이 부딪히고, 감정이 튀고, 문장이 엉켰을 때 느껴지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오만하고 당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이 가장 나답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그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나도 안다. 

나도 까마득해지는 그런 나를, 그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속단일지 몰라도 만약 그와 함께라면 그런 나를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그와 함께가 아니라도 그런 나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사회적 여건도, 환경도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누구의 탓이 아니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나,  지금의  나이에 맞는, 지금의 환경에 맞는 나로서의 존재 방식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럼 그는...
그래서 그는..., 나는 그를 친구로 남기기로 한다.
깊어지기 전에 멈추는 쪽을 택했다.

아마도
내가 가장 살아나는 방식과 지금 놓인 현실 사이에서 조율을 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이 조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스무 살의 결심처럼 뜨겁지도 않고,  숨이 헐떡이지도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누군가에 의해 더 작아지는 것은 온 몸으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생존본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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