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감정을 확정하지 않았다.
관계의 의미도 규정하지 않고, 미래는 더욱 예측하지 않는다.
이 관계가 깊어질 수도 있고, 흐지부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형태로 남을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나는 이것을 기록한다.
이 시간이 헛되지 않고,
상대 뿐만 아니라 나를 존중하며
이 시간을 통해 나를 더 단단히 하려고 한다.
어젯밤 굿나잇 인사를 보지 못한 채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모티콘이 붙은 굿나잇인사가 있었다.
나는 감자와 아침 산책을 하다가 들판을 뛰는 감자의 모습을 찍어 사진과 함께 굿모닝 인사를 보냈다.
오전에는 며칠째 어깨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을 가는 길이라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 산책 이야기, 그곳의 흐린 날씨, 아직 정해지지 않은 오늘의 계획 같은
별 것 아닌 이야들을 나누다,
그가 병원에 도착을 했다는 말로 통화를 마쳤다.
참 편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그에 대한 마음은 한 단어로 말하기 어렵다.
설렌다고 하기엔 차분하고,
멀어졌다고 하기엔 여전히 매일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많이 만나지 않았다.
손에 꼽을 정도의 얼굴을 보고,
나머지 시간은 문자와 통화로 서로를 짐작하며 지내왔다.
그래서인지
어떤 날은 가까워진 것 같고,
어떤 날은 처음보다 더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금 시큰둥해진 것 같다가도
습관처럼 그의 안부를 먼저 떠올리고,
그가 늦잠을 잔다고 하면 괜히 나까지 느긋해진다.
이게 좋아하는 건지,
익숙해지는 건지,
아니면 그냥 서로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마 좀 젊었을 때라면 이런 상태를 불안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확인하고 싶고, 앞으로가 궁금할 것이다.
병원 문앞까지 왔다는 그의 말에,
어서 들어가세요, 하고 전화를 끊으며 서로의 하루가 잘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관계이고, 확정할 수 없는 마음이지만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이 시간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멀어지는 마음과 친해진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상태를 지켜보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게
지금의 마음을 정의하기보다 이 시간을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
지금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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