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있는 그와 통화를 했다.
어떻게 거기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해 여름 퇴직 전까지 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창의성이 별로 없어서 자신은 시키는 일을 잘만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나는 "아, 그런 성향의 사람이군요." 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하면서
오래 전 자신이 제안한 일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들도 이야기,
새로운 제안 뒤 감당해야 했던 뒷일들,
상사에 따라 달리 업무평가대해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그 생각만으로도 화가 나는 듯 했다.
평소 말투가 차분한 말투와는 다른 음성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가 일하던 시절을 거의 모른다.
스쳐가듯 말한 적은 있어도 제대로 말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의 말을 들으면서 서로가 모르는 것이 참 많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거에 그가 어떤 공부를 했고,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고 해서
지금 이어지고 있는 관계에 어떤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역시 일하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다르다.
간혹 일할 때 나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아닌 사람을 설명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단락의 삶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대학을 졸업하고 첫 사회인이 되었을 때처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삶의 시간이 된 것이다.
다른 삶의 잣대는
해당하는 삶으로만 이해하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과거를 다 듣고도
나는 내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과거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는 그도, 듣는 나도 뭔가 공허한 느낌이었다.
참 이상하지.
그 공허함이 관계를 멀어지게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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