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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걸음 — 조심스러움과 용기

생각보다 가깝고, 생각보다 먼

by 발비(發飛) 2026. 1. 24.

그는 어제 서울에 있었다. 

그도 나도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퇴직을 하고 지방으로 옮겨 살아가고 있다. 

그는 한 달만에 서울을 가는 것이었지만 설레인 듯 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잘 놀았다고 했다. 

평소보다 더 생기가 있는 듯해 그에게도 퇴직은 무거운 것이었구나 생각했다. 

 

종일 재미있게 지낼 거라는 생각에 

어제는 평소에 나누던 몇 번의 안부인사와 카톡이 없을 거라며 서로 미리 인사를 했었다. 

 

마트에서 물어볼 것이 있어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는 게 그에게 전화가 걸어버렸다. 

깜짝 놀라 전화를 끊고, 잘못 걸었다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정도 관계이구나, 생각했다.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전화를 잘못 걸었을 때, 깜짝 놀라서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관계였다. 

 

밤에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잘 못 걸 정도로 가까워진거죠?"

엄마에게 건다는 게 잘못 눌러진 것 같다고 하자, 엄마만큼 가까워진거네요, 하고 넉살을 부렸다.

 

나는 그와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고 생각했고, 그는 생각보다 가깝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와 나는 누가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먼 거리를 두고 통화나 메시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가 그렇겠지만

늘 차분하고 담담하다. 그래서 만남이 지속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가깝고, 생각보다 먼 것이 있다.

같은 일을 두고 나는 거리를 떠올렸고,
그는 친밀함을 떠올렸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관계란 그런 식으로 각자의 기준 위에 따로 서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가까워졌다는 사실보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해버린 나 자신에 놀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 정도의 실수쯤은
이미 사이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고.

멀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관계는 끝나지 않고,
가깝다고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와 나는 이렇게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거리를 가늠하며
같은 방향을 잠시 걷고 있구나.

아마 지금의 우리는
그쯤에 와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정도의 거리감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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