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계와 걸음 — 조심스러움과 용기

말이 많았던 날

by 발비(發飛) 2026. 1. 14.

어제는 처음으로 가슴이 뛴 날이었다. 

 

그도 나도 반가웠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다른 날보다도 더 많은 통화와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그 횟수나 내용이

'1일을 해도 되지 않겠냐'는 그의 말처럼  아직 시작하지 않은 단계라기 보다는

뭔가 시작하려고 문 앞에 서 있는 단계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그날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과는 달리 어제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 

지난 시간 어딘가,

그때 만났더라면 하는 과거 어느 시점까지,

존재하지 않는 시간들의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도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보다 다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잡히지 않는 시간들에 대한 말할수록

서로 잘 알지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삶의 전반이 드러났고,

둘의 이야기 속에서 그려진 미래의 모습은 꽤 다른 방향으로 어긋나 있었다.

 

나는 조용하게 다시 현재의 이야기로 돌아오고 싶었다. 

아마 그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누구랄 것도 없이 말을 돌려 현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다시 편안해졌다. 

 

그는 오후에  어깨가 아파서 정형외과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처음이었고,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몇 년 전에도 앓었던 오십견이 이번엔 반대쪽으로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몇년 전에 오십견으로 꽤 고생했었다. 엄청 아팠다.

그도 분명 그랬을텐데 그 이야기를 이제 한거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어디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하지는 않았다. 

 

이 관계가 지속된다면 각자가 더 자주 아플 것이고, 하루하루 늙어갈 텐데,

우리가 그려보았던 미래의 어느 장면에도 그런 말은 없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며 아, 말이 참 많았던 날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굿모닝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물 마셨다는 이야기,

차를 마셔야겠다는 이야기,

오늘도 병원을 가야겠다는 이야기;

아프더라도 아침에는 우아하게 차 한 잔쯤은 천천히 마시자는 이야기를

짧게 주고 받았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조심스럽게, 너무 멀리 가지 말고,

현재만 딛고 가기로 했다.  

 

 

 

 

'관계와 걸음 — 조심스러움과 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은 주고받고, 전화는 짧게  (0) 2026.01.16
목소리가 커졌다는 건  (1) 2026.01.15
가슴이 뛴 날  (0) 2026.01.13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0) 2026.01.12
금단현상  (1) 2026.01.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