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당간당 하는 일을 그래도 하다가 마주친 단어.
'어른'
괜히 떨며, 어른은 어떤 연관어를 가지고 있을까 폭풍 검색을 하던 중
어른과 관련된 그리고 일본과 관련된 논문 하나를 발견하였다.
'혼네'와 '타테마에'
혼네는 어른이라면 절대 내놓지 말아야 할 진짜 속마음
타테마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말
한 마디로 '국화와 칼'이다.
논문에는 하나의 일화가 있었다.
사무라이 한 명이 새로 만든 자신의 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논에서 떠들며 웃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사무라이는 농부의 목을 베었다.
이유는 자신의 새 칼이 얼마나 잘 드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료마가 간다]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일본사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위의 일화와 같이 사무라이 집권시대에는 하위계급의 목숨은 그냥 파리의 것과 같았다.
힘이 우선인 사회, 어제의 이웃이 내일의 적이 되는 사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내세울 사람은 없다.
네 라고 대답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 뿐인다.
바글바글.. 섬에서 이방인과 이방의 문화가 없어 타인에 대한 궁리가 필요없이 오랜 접촉으로 그냥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란 어떻게든 자신의 진짜를 꽁꽁 숨는 것 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건 한병철작가의 [투명사회]에서 언급한 것과 유사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이걸 그르다 맞다라고 정의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들의 습성이 일본인 자신의 잘못이 아닌 그들의 환경과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생산된 것이다.
우리는 좁은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길 방향으로 둔 채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보는 것을 모두가 본다.
모든 것을 드러내놓은 곳에서 나는 어느새 일본인들처럼 '혼네'와 '타테마에'의 습성을 닮아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듯 하다.
등 뒤에 있는 누구도, 옆에 있는 누구도 어느새 우리가 싫어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일본인들의 습성을 닮아가고 있는 듯 하다.
한국인인 우리가 혼네와 타테마에를 비난하였지만, 우리가 그런 습성을 가지게 된 것 또한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환경이 그렇게 된 까닭일 것이다.
인간은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결국 그 환경에 놓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사무라이시대처럼 딱 그런 피도 눈물도 없는 무지막지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속마음이 어떻든 표시내지 않고, 넵! 하고 대답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는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성숙한 사회인이라고 스스로도 타인들도 생각한다.
일본인들은혼네와 타테마에, 이 두가지를 어른의 자격이라고 했다.
이 둘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제 우리도 혼네와 타테마에를 쓰지 않는 사람을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말하고,
의지를 굽히지 않고 소신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존경하던
우리는... 지금... 혼네와 타테마에의 습성에 은연중에 길들여졌다. 어른스럽게 말이다.
우리는 진짜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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