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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7월 4일생, 전우

by 발비(發飛) 2010. 7. 4.

 

 

 

 

EBS에서 깊은 밤 틀어준 오래된 영화 <7월 4일생> ,

다시 보면서 어쨌건, 어떤 식으로든 영웅을 만들고야 마는 미국영화가 참 가관이기도 하였지만,

그 끝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보이는 인간과 인간, 거기서도 주어진 상황이 다르면 달라졌다.

국가와 가족은 나를 위해 뭐든 해 줄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나도 국가와 가족을 위해 전쟁에 나갔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겪은 것은 국가와 가족은 모른다, 모르고 싶어한다.

국가와 가족은 너가! 라고 말하며, 아무것에도 책임이 없는 듯 새로운 과제를 준다. 이 곳에 있지 말고 멕시코로 가라고 했다.

싼 값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만이 그들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빌어먹을 것들!

그래서 영웅을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또 전쟁터로 내몬다.

영원히 인간은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고 나는 확신을 하고 말았다.

 

나에게는 전우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절박하고 가장 아팠던 고통의 순간에 나와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고통을 느꼈던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함께 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 고통에서만은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 외의 시간에서 조차 전우라는 접점에서 만난다.

 

그 전우를 오랜만에 만났다.

 

어느 구석에서도 틈이 없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고통이었을 부분을 한 틈도 비우지 않고 꼼꼼히 메우고 있었나보다.

부재라는 고통의 자리를 자신의 가족으로, 작업은 거의 끝나가고 있는 듯 보였다. 스스로 그 완벽함에 도취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온 그는 빨리 그 시간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는 이제 동전치기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었다.

잠시라도 머무르면 애써 메운 틈이 금방 무슨일이라도 생길 듯, 두 팔을 넓게 펴고 비호하고 있었다.

함께 전쟁을 하였지만, 그 전쟁으로 인한 상처의 깊이에 따라 세상을 보는 방향은 완벽히 달라진다.

애초에 인간이 함께, 누군가 내 안으로 들어와 완벽히 같은 방향을  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렇지 못함에 대한 겨우 반작용정도라는 것을 전우가 오고 간 다음에 느꼈다.

그들의 세상에서 그가 고통이라는 단어를 잊고 완벽한 행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물론 그것은 그의 몫이지.

그는 완벽함을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있지만,

나는 어린 날, 찰흙으로 만든 말을 서둘러 햇빛에 말리려다 벌어진 어린 어느날처럼

두 손으로 말을 몸통을 말아쥐고 있었던 그 날처럼 나는 두 팔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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