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로나의 능선이 보이는 작은 방
박정대
이곳은 대낮에도 어둡다
램프의 심지에 불을 붙이면 겨우 돋아나는 지구, 지구에
불이 켜지면 나는 나의 고독과 함께 생의 탁자에 돌아와
앉는다
누군가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가스레인지의 불꽃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뜨겁게 물이라도
끓이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지구는 몹시도 춥고 어둡다
그대가 없는 지구는 대낮인데도 흑야다, 그래서 검은 대낮의
밤을 나는 그대 생각의 불꽃만으로 견딘다
그래서 어두운 창 밖에는
하루 종일 함박눈이라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삶은 종일 계속 되는 것은 아니다.
2006년 여름 안나푸로나 베이스캠프까지 트래킹을 했었다.
첫날, 아침부터 종일 걷는다.
잠시 쉬고,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몬순시기라 종일 안개비가 오락가락하는 계절, 안나푸로나로서는 비수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둑해지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을때, 주인말고는 아무도 없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달밧을 먹은 뒤,
주인은 검지손가락만한 물렁한 초를 주었다.
오늘밤 어둠을 밝힐거리, 한시간을 태울 수 있을 정도.
어둡고 습한 방에 들어와 작고 물렁한 초를 마주하고 앉았을 때,
밖에는 비가 다시 내리고,
주인은 떨어져 있는 집으로 돌아간 시간, 술 취한 포터 라쥬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삶은 종일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촛불이 불을 밝히는 그 좁은 곳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 때,
그 순간, 나는 내 삶을 만났다.
삶을 보았다.
내가 종일 오르던 안나푸로나도, 나의 짐을 대신 지고 가던 포터 라쥬도,
더 멀리 내가 두고 떠나왔던 모든 이들도,
적어도 그날 그 시간만은 내게 삶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 때 내 삶은 한 평도 밝히지 못하는 촛불 아래,
한 사람,
누군가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깊은 어둠 속에서 만나는 고독,
그것은 삶을 만나는 것이다. 원하는 삶을 만나는 것이다.
하루종일 걸었던 나는 삶을 만났던 것이 아니라, 삶을 만나기 위해 걸었을 뿐이었다.
삶을 만난다는 것은,
내 삶을 만난다는 것은,
철저한 고독 속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공포 안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어둠 속의 한 평 불빛을 마주고서야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단 하나의 삶을...
그대가 없는 지구는 대낮인데도 흑야다, 그래서 검은 대낮의
밤을 나는 그대 생각의 불꽃만으로 견딘다
시인은 안나푸로나 눈덮힌 능선을 바라보며, 대낮의 흑야를 경험했고,
난 안나푸로나 능선 안, 어둠 속 한 평 빛 안에서 삶을 마주했다.
홀로 길을 떠나본 사람은 안다.
내 삶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철저히 아픈 것인지를...
꼭 함께 가야할 삶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철저히 고독한 것인지를...
그렇지만... 삶과 만날 때 느끼는 아린 기쁨.
고통의 카타르시스.
참 오랫동안 삶을 만나지 못했다.
2006/ 07/ 30
어둠 속에 들리는 타인의 웃음소리는 공포스러움이다.
빛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분명해.
빛이 없는 곳의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동물인 듯이 내게 음흉한 소리로 들린다.
실체란 것은 결국 빛을 통해서 다듬어지는 것일까? 환한 빛.
빛을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실체는 야만의 근성을 가진 동물일지 모를 일이다.
빛이 있어 타인이 다듬어지고, 나는 빛 때문에 강해지는 것이다.
빛을 없는 오늘,
내 주위의 타인들에 대해 예민하게 감각을 세운 짐승이 된다.
혹 그들에게 잡힐까.
혹은 내가 그들을 잡을까.
너 어디있니? 아주 조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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