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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불면25] 사람들은 어떻게 짬뽕을 견딜까

by 발비(發飛) 2026. 2. 28.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몇 달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다.

밤새 속이 부대껴 결국 일어났고, 

무겁고 멍한 머리. 개운해지고 싶은 마음에 오래된 인스턴트 알커피를 한 잔 탔다.

역시 쓰고 고소하다.

 

어제 도서관에서도 컨디션이 안 좋았다.

얼마 전 앓았던 감기가 남은 것인지, 새 감기를 하는 것인지 몸이 떨렸다.

순댓국이 생각났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때, 3시간 연강 강의가 끝나면 녹초가 되었고

매주 집 앞 순댓국 집에 가서 한 그릇을 비웠다.

그럼 다시 살아났다. 

체력이 바닥이 나면 순댓국을 본능적으로 찾았다.

그때 그 순댓국 식당은 꽤 이름 난 집인 만큼 맛이 있었다.  

순댓국은 내게 흔히 말하는 소울푸드가 된 셈이다. 

 

도서관을 나와 식당이 많은 번화가를 돌아다녔지만 딱히 들어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해장국 집 간판에 순댓국이 그려져 있었다. 

뼈해장국도 있어 여기면 괜찮겠다 싶어 들어갔다.  

저쪽 테이블에 어색하게 인사를 나눠야 하는 아는 분이 눈에 띄었다. 

서울이 아니었다. 

역시 좁은 바닥이다. 

얼른 뒤돌아 나왔다. 

 

새삼 이곳이 이상했다. 

나는 언제 어디서라도 혼자 밥을 잘 먹을 수 있는 혼밥의 달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고향인 이곳에서는 그게 안 되는 거였다..

 

집으로 가야겠다. 

집엔, 오늘 내 몸이 원하는 것이 없는데...

 

그러다 짬뽕집이 눈에 띄었다. 

감자와 산책을 하다보면 늘 줄이 길게 서 있는 이른바 맞집이다. 

주로 청년들이었다. 

저녁시간이 살짝 넘겨서인지 줄도 없었고, 아는 이도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내가 되어 '한 사람이요' 하고 가장 작은 테이블을 찾아 앉아 짬뽕을 주문했다. 

 

짬뽕.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짬뽕을 먹은 기억이 없다. 

중국집을 좋아하지 않고 회사에서 여럿이 가게 되는 경우라도 고추잡채밥 정도를 먹었다. 

짜장면은  한 두번, 짬뽕은 제로.

엄마의 말처럼 별나다. 

 

시뻘건 짬뽕이 나왔다. 

면이 커다란 그릇에 가득하고, 면 위로 야채와 고기와 해물이 수북히 얹혀있다. 

낯설다. 

고등학교 때 분식점 짜장면 이후에 면을 이렇게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뭔가 결연한 마음으로 이걸 다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회사동료들도, 늘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모두가 좋아하는 짬뽕을 나도 같은 마음이 되어봐야지 싶었다.

몸이 이상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다 먹고, 힘을 내고, 개운해져야지 싶었다.

 

짬뽕의 면은 굵고 라면보다 쫀쫀했다. 힘이 셌다.

젓가락을 쥔 손가락에 힘을 바짝 줘서 힘이 센 면을 끌어올려 먹고 또 먹었다. 

면만 힘이 센 것이 아니라 국물 감도 셌다. 

처음에는 그냥 먹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정수기 뜨거운 물을 한 컵 받아 국물에 섞었다.

국물에 힘이 빠졌다. 

면을 힘 빠진 국물에 흔들어 가면서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짬뽕집을 나오니 몸에 땀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붕어싸만코를 하나를 먹었다. 입 안에서 짠 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밤새 뒤척였다. 

속이 부대껴서, 배가 무거워서, 숨이 차서 잠을 설쳤다. 

캄캄한데 계속 깼다. 

 

불면의 구간을 통과하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리듬을 되찾았는데,

짬뽕을 먹었다고,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카페인 함량이 가장 높다는 베트남 G7 커피를 마시고야 말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짬뽕을 견딜까?

몸이 약해진 날, 나는 굳이 힘 센 면을 다 먹으려 했을까.

 

나는 여전히 힘을 시험하는 버릇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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