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병(病)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을 이르는 말.
어제 아침 인사 이후 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며칠 전 아들이 온다고, 아무래도 종일 같이 있어야 해서 연락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럴 것 같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몇달 안 된 만남이지만 그리고 가까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자주 나눈 통화와 문자가 일상이 되어버린 듯 하다.
허전한 마음이 크다.
섭섭한 마음도 조금 든다.
그러다 생각한다.
내가 같은 경우라면, 나는 어떨까?
나도 그럴 것 같다.
우리는 이유가 어쨌든 자식들에게는 원초적인 미안함이 있고,
아마 자식들도 우리에게 원초적인 원망이 있을 것이다.
일년에 한두번 얼굴을 보는 좀 이상한 부자지간, 모자지간의 긴장감은 부모의 입장에서 더 크다.
그 만남을 이길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이미 성장한 자식은 분리가 되어야하니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은 그와 나 같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동병상련에 대해서 생각한다.
동병상련을 느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아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먼저 안아줘야 할까?
뭔가 섭섭한 내 마음을 알려줘야 할까?
나는 그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임과 동시에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는 사람이다.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나를 미로 속에 빠트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와 그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관계에서든 내가 사라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처럼 내가 사라진 관계는 결국 관계 자체가 소멸되고 말 것이다.
베스트프렌드가 저스트 프렌드가 되어도,
베스트프렌드가 더 발전된 남녀가 되더라도,
결국 지켜야 할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나이에 해야할 관계맺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아들과의 만남이 내 생각을 꽤 먼 곳까지 끌고 가고 있다.
확실히 그때와는 다른 만남이고, 관계이다.
오늘 동병상련은 그의 아픔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잘 바라봐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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