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계와 걸음 — 조심스러움과 용기

동병상련

by 발비(發飛) 2026. 2. 7.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병(病)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을 이르는 말. 

 

어제 아침 인사 이후 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며칠 전 아들이 온다고, 아무래도 종일 같이 있어야 해서 연락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럴 것 같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몇달 안 된 만남이지만 그리고 가까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자주 나눈 통화와 문자가 일상이 되어버린 듯 하다. 

 

허전한 마음이 크다. 

섭섭한 마음도 조금 든다. 

 

그러다 생각한다. 

내가 같은 경우라면, 나는 어떨까?

나도 그럴 것 같다. 

 

우리는 이유가 어쨌든 자식들에게는 원초적인 미안함이 있고,

아마 자식들도 우리에게 원초적인 원망이 있을 것이다. 

 

일년에 한두번 얼굴을 보는 좀 이상한 부자지간, 모자지간의 긴장감은 부모의 입장에서 더 크다. 

그 만남을 이길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이미 성장한 자식은 분리가 되어야하니 전전긍긍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은 그와 나 같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동병상련에 대해서 생각한다. 

 

동병상련을 느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아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먼저 안아줘야 할까?

뭔가 섭섭한 내 마음을 알려줘야 할까?

 

나는 그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임과 동시에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는 사람이다.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나를 미로 속에 빠트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와 그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관계에서든 내가 사라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처럼 내가 사라진 관계는 결국 관계 자체가 소멸되고 말 것이다. 

 

베스트프렌드가 저스트 프렌드가 되어도,

베스트프렌드가 더 발전된 남녀가 되더라도,

결국 지켜야 할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나이에 해야할 관계맺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아들과의 만남이 내 생각을 꽤 먼 곳까지 끌고 가고 있다. 

확실히 그때와는 다른 만남이고, 관계이다. 

 

오늘 동병상련은 그의 아픔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잘 바라봐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와 걸음 — 조심스러움과 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가 온다  (0) 2026.02.11
일상 복귀  (0) 2026.02.09
가족  (1) 2026.02.05
평화 축복  (0) 2026.02.04
행복하길 바래  (0) 2026.02.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