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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내게는 지점

by 발비(發飛) 2015. 6. 21.

나는 이스탄불에 두 개의 공항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몸과 마음은 반드시 고생을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지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상황이 오면, 여기는 진행단계가 아니라 멈춤의 단계구나 하면서 잠시 행동을 멈추고 생각을 한다.

움직이던 행동을 멈추면, 마치 운전을 할 때 브레이크를 밟으면 몸이 갑자기 앞으로 쏠리듯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조금 움직여있기도 하다. 그럼 조금 후진.

 

스페인의 마지막 여행지 바르셀로나는 떠나는 날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가든 하루쯤은 그 곳의 대충 구역을 이해하고, 또 하루쯤은 그 구역마다 가봐야 할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사이 사이 묵고 있는 호스텔의 주변에서 일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곳들을 찾아놓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움직이지만 홈질같은 듬성했으므로 매번 뭔가 실수를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바르셀로나에 있으면서도 바르셀로나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다음 여행지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경유지로 이스탄불을 예약만 했지 어떤 준비도 없었다.

그저 비행기를 잘 타고, 이 곳까지 날아오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왜냐하면 지난 3월에 왔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나는 이스탄불을 안다는 것과 같은 카테고리에 묶여버렸다. 나도 모르게 말이지 .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다.

 

이스탄불에는 두개의 공항이 있는데,

하나는 아타튀르크공항으로 올드시티와 가까운 곳에 있고,

또 하나는 하비다괵첸공항으로 아시안지구에서도 30미터가 떨어진 곳에 있다.

 

이스탄불은 크게 세 개의 지역으로 나눈다.

하나는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아는 아야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가 있는 올드시티, 하나는 탁심광장이 있는 유럽지구, 하나는 두 곳의 베드타운 격인 아시아지구.

이 세 곳은 모두 바다가 사이에 있다. 세 지역 어디를 가려고 해도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나마 올드시티와 유럽지구는 갈라타다리가 비교적 짧아서 걸어서 건너면 되고, 

유럽지구와 아시안지구 사이를 잇는 엄청 긴  다리는 시내와 어차피 거리가 멀어서 차들이 다니는 데만 주로 사용되어 무조건 아시안지구는 배를 타야 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안 쪽에서 들고나는 비행기는 대개 아타튀르크공항이고, 유럽쪽에서 들고나는 비행기는 주로 하비다괵첸공항이다.

당연히 지난 3월에 내가 탔던 비행기는 아타튀르크 공항이었고, 그곳은 올드시티와 가까운 곳이었으므로 별 생각없이 올드시티에 숙소를 이틀 잡았다. 그리고 바다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볼 것이 없어서 여행자들이 숙소로 잘 잡지 않는 아시아지구에 나머지 4박5일을 잡았다. 보스포르스해협을 매일 배로 건너다닐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부킹을 하기 위해 세달만에 예약확인서를 배낭에서 꺼냈는데, 뭔가 낯선 단어가 적혀있다. 도착지 공항이 듣도보도 못한, 읽기도 힘든 사비하괵첸공항이다. 와이파이가 안되는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맵미를 열어 찾아보니, 이스탄불에서 엄청 먼 동쪽 어디에 있는 공항이었다.

설마,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가 있겠지 하며 전자책으로 다운 받아둔 가이브북을 그제야 열어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가는 법을 찾아보았다.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법이 자세히 잘 나와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터키를 갈 때는 그 공항을 이용하니까. 그런데 사비하괵첸공항에 대한 안내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가는 길이 어려워서 이해하기 좀 힘드니까 신통치 않았겠지.

 

바르셀로나에서 이스탄불로 오는 세시간 반동안의 비행시간동안 공부한 결론은,

하바타스라는 공항버스를 타고 카바타스라는 곳까지, 카바타스라는 곳에서 케이블카도 아닌 전철도 아닌 뭔 그런 것을 타고 탁심광장까지 가서 , 거기서 트램을 타고 술탄아흐멧까지 가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백패커이다. 배낭의 무게를 견디면서 정말 산 넘고 바다건너 가야하는 거다. 

 

더 약이 오르는 것은 예약을 거꾸로 한 셈이 되어버린 호스텔 상황이다.

이스탄불에서 처음 이틀은 올드시티에서 묵기로 했고, 나머지 나흘은 아시안지구에서 묵기로 예약을 했는데, 서울로 돌아가려면, 아시안 지구에서 또 산넘고 바다건너 올드시티를 지나 아타튀르크공항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만약 호스텔을 거꾸로 예약을 했다면 신의 한수라고 만큼 심플해지고 간단한 건데 말이다. 아시아지구에서는 사비하괵첸까지 하바타스가 한번에 가고 오고, 올드시티에서는 전철을 한 번 만 갈아타면 아타튀르크공항에 갈 수 있다.

 

쉬운 길이 있었음에도 무지함이 만들어낸 참사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을 그냥 지점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이스탄불에 왔으면 올드시티부터 가서 이스탄불의 역사가 가득한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 곁에서 며칠 자는 것도 당연했고, 스페인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것이니 하비다괵첸공항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그런데 니가 뭘... 하며, 그냥 그렇게 좀 복잡하게 사는 것이 운명이려니 하면서 사는 거지.  이 참에 이스탄불 가이드북 열심히 읽어서 이스탄불의 복잡한 구조를 익혔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리고, 이스탄불에 도착하던 날 사비하괵첸공항에서 하비타스라는 공항버스를 타고 카바타스에서 내려 50리라를 주고 택시를 타고 단번에 숙소까지 갔다. 2만 5천원으로 여기서 호스텔에 이틀을 묵는 비용이다. 손 떨렸지만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모르는 길을 모르는 교통수단 3번을 갈아탈 열정은 없었다. 그렇지만 올드시티에서 아시아지구로 이사를 올 때는 길을 알고 있었으므로 트램을 타고 갈라타다리 옆에 있는 에미뇌뉘항에서 카디교이행 배를 타고 순조로웠다. 지금은 매일 보스포르스해협을 오가는 배를 타고 올드시티나 유럽지구로 가서 지도 없이도 잘 돌아다닌다.

 

대견하지 않은가?

뭐라도 하면 한다. 가면 가게 된다. 잘 갔다. 배낭이 무거워서 골병이 들어서 그렇지.

이제 며칠 뒤면 한국으로 들어가는데, 구시가지 근처의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숙소에서 5분을 걸어나가 전철을 타고, 올드시티와 바다 밑 터널을 뚫어놓은 기차를 탈 수 있는 기착역으로 가서 기차로 환승한 다음 올드시티로 가서 다시 전철을 갈아타고 공항으로 가는 방법,

또 하나는 부두로 올드시티로 가는 배를 타고, 올드시티로 건너가 트램을 갈아타고, 전철로 다시 갈아타고 가는 방법, 나는 이 중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 마지막으로 배를 타기 위해서이다. 세 갈래로 갈라진 바다 뒤로 육지가 각각의 모습으로 있는 이스탄불을 본다는 것은 꼭 한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이미 내가 유전인자로 받은 내 안의 무엇과 같은 올드시티와 대낮과 같은 유럽지구,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아시아지구. 나는 그렇게 이스탄불을 본다. 그리고 이곳을 이 여행의 마지막 한 땀과 같은 지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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