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불안의 서 ]를 읽으며 베겨둔 글들, 다행히 에버노트에 있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은 항상 다른 무엇이 되려 한다. 영혼은 칭얼거리는 어린 아이를 못 견디듯 스스로를 못 견디고, 불안은 점점 커지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텍스트 10,
''꿈의 가장 천박한 점은 누구나 다 꿈을 꾼다는 것이다. 밖은 낮에 일거리와 일거리 사이 틈이 생기기만 하면 가로등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던 배달원이, 어둠 속에서 뭔가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의식을 관통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한여름 햇살이 비쳐드는 사무실의 고귀한 권태 속에서 장부에 숫자를 기입해 넣고 있을 때, 순간순간 내 마음을 사로잡아버리는 바로 그 생각이기 때문이다---「텍스트 142」
혼자만의 대화에 빠져 있던 도중에 순간적으로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끼면, 바로 지금처럼, 나는 지붕들 위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을 향해 말을 건다. 소리 없는 산사태로 무너질 듯하여 더욱 가까이 보이는 도시의 비탈 위, 부드럽게 휘어진 모양으로 서 있는 높다란 나무들에게 말을 건다. 급격하게 경사를 이루며, 플래카드처럼 겹겹이 서 있는 집들에게 말을 건다. 하나하나의 창문은 플래카드의 철자와 같다. ---「텍스트 152」
예를 들어서 나는 동시에, 각각 별개이며 뒤섞이지 않는 방식으로 어는 강변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남자이자 그와 동행하는 여자가 되는 것을 꿈꾼다. 동신에 똑같은 선명함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따로따로 개별적으로 있는 나를 보기 원한다. 두 개의 존재에 똑같이 감정이입할 수 있기를 원한다. 남쪽 바다를 항해하는 의식을 지닌 배이자 동시에 어느 책의 한 페이지가 되기를 원한다. 얼마나 부조리할 것인가!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부조리하다. 그 꿈은 차라리 가장 덜 부조리한 종류에 속하리라. ---「텍스트 157」
나는 달아나고 싶다.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내 것으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나는 홀연히 떠나고 싶다. 불가능한 인도나 모든 것이 기다리는 남쪽의 섬나라가 아니라, 어딘가 알려지지 않은 곳, 작은 마을이나 외딴 장소, 지금 여기와는 아주 다른 곳으로. 나는 이곳의 얼굴들을, 이곳의 일상과 나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낯선 이방인이 되어 내 피와 살 속에 뒤섞인 위선 벗어나 쉬고 싶다. 휴식이 아니라 생명으로서 잠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싶다. 바닷가의 작은 오두막, 아니 험난한 산비탈 벼랑의 동굴이라 할지라도 내 이런 소망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의지는 그렇지 못하다. ---「텍스트 167」
죽어가는 보랏빛 속 하루가 흐르며 저물어간다.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으리라. 내가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도 없으리라. 나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미지의 산 미지의 계곡으로 내려왔다. 내 발자국은 저녁이 느리게 도래할 무렵 숲 속 개활지로 나 있었다. 내가 사랑한 모든 이가 그늘 속에 남겨진 나를 잊었다. 마지막 배에 관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 쓰지 않았을 편지에 대해서, 우체국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텍스트 205」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이 사랑이라면 죽어도 괜찮다. -텍스트234,
나를 찾은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내가 찾아낸 것은 의심스러우며, 내가 얻었던 것은 이미 내게 없다. 나는 길을 걷듯 잠을 자지만 사실은 깨어 있다. 나는 잠을 자듯 깨어 있고, 나는 내게 속해 있지 않다. 결국 삶이란 근본적으로 거대한 불면이고, 우리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의식이 또렷한 인사불성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텍스트243,
행동하는 삶은 모든 자살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것으로 보였다. 나에게 행동이란, 부당하다고 판결이 난 꿈에서 다시 무뚝뚝하게 유죄판결을 내는 것과 같았다. 외부세계를 지배하고, 사물을 변화시키고, 본질을 극복하고,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동은 나에게는 언제나 백일몽보다도 더욱 모호할 뿐이었다. 모든 행동 속에 깃들어 있는 무용함은 이미 어린 시절에서부터 나 스스로를 포함하느모든 것으로부터 유리되고자 했던 내가 가장 선호하던 시금석이었다. 행동이란 자기 스스로에 대항하는 반응이다. 영향력 행사란 집을 떠나는 것이다. 현실의 실질적 성분이 일련의 감가인 곳에서 상업이나 산업, 사회적 가족적 결속과 같이 단순한 것들이 복잡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는 한번도 납득하지 못했다. 진실의 이상을 향하는 영혼에 비하면 그것들은 마음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사물이다. ---「텍스트 247」
호감이란 나에게 항상 피상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솔직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배우였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배우였다. 사랑을 할 때마다, 나는 마치 사랑을 하듯이 사랑했다. 나 자신이 그 대상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텍스트 261」
오늘 사무실의 배달원이던 그가 영영 고향으로 떠났다. 이곳 인간 집단의 한 부분으로 여겨왔고, 따라서 나 자신의 일부, 내 세계의 일부이기도 했던 그가 오늘 우리를 떠났다. 나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작별 인사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와 복도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그를 껴안았다. 그러자 그는 수줍게 마주 안았다. 내 마음의 뜨거운 눈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솟구칠 것 같았으나, 나는 억지로 꾹 참았다. 한번이라도 우리에게 속했던 것들은, 비록 그것이 순전한 우연에 의해 우리의 일상이나 우리의 시선에 들어왔던 것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우리의 것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의 일부로 남는다. 오늘 내가 알지 못하는 갈리시아의 고향 마을로 떠나버린 것은, 나에게는 단순한 사무실의 배달원만은 아니었다. 내 삶의 실체를 이루는 일부, 눈에 보이는 내 존재의 한 부분이었다. 오늘 나는 줄어들었다. 나는 더 이상 옛날의 내가 아니다. 사무실의 배달원이 떠났다. … 그렇다. 내일이나 아니면 그 어느 미래의 날, 죽음과 떠남의 종소리가 소리 없이 울려 퍼질 때, 나 또한 더 이상 이곳에,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가 될 것이다. ---「텍스트 279」
나는 내 안에서 여러 개성을 창조해냈다. 나는 계속해서 다양한 개성들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꿈을 꿀 때마다 모든 꿈이 하나하나 육신을 입고 서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꿈들은 나를 대신하여 계속해서 꿈을 꾼다. ---「텍스트 299」
우리들 각자는 한 명 이상이고 여러 명이며 수많은 자아다. 그러므로 주위 환경을 무시하는 자아는 그 환경 때문에 즐거워하거나 고통받는 자아와 같은 자아가 아니다. 우리의 존재라는 거대한 영토 안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텍스트396,
"우리 꿈꾸는 자이며 생각하는 자 모두는 어느 직물회사에서, 혹은 도시 저지대의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는 보조회계원들이다. 우리는 출납부를 기록하며 손실을 앓는다. 합산을 하고 페이지를 넘긴다. 우리는 총계를 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채가 언제나 우리를 압박한다. ---「텍스트419」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은 나를 침입자처럼 바라보았다. 최소한 낯선 이방인처럼 대하곤 했다. 친척들이나 지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나를 아웃싸이더 취급했다. 그 사람들이 결코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 주위에서 발생하는 낯선 기운에 그들이 즉흥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그들 모두는 하앙 나에게 친절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이맛살을 찌푸리고 싸움을 걸려는 상대를 일생동안 나처럼 드물게 만난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친절함은 단 한번도 진심어린 이옂ㅇ이 아니었다. 기질상 나와 가장 가까웠던 이들에게조차 나는 항상 손님이었다. 손님으로 좋은 대접을 받았고, 낯선 사람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인지 마음으로 끌리는 애정은 아니었다. 낯선 침입자에게 하는 행동으로는 지극히 당연하다. 주변인들의 이런 태도는 대부분 나 자신의 태도와 모호하게나마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믿는다. 아마도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 모종의 냉담한 분위기를 발산하게 되고, 그래서 다른 이들은 무의식중에 나의 차가움에 대해서 의아심을 갖고 자신도 모르게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사람들과 쉽게 사귀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거기에 애정 어린 마음은 없다. 나는 헌신이란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일은 아예 생각할수 조차 없다.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반말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슬픈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 괴로워할 것도 즐거워할 것도 없이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는 항상 다른 이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타인들이 나에게 거리를 둘 때마다 괴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운명의 고아인 나는 다른 모든 고아들처럼 타인에게 애정의 대상이 되기를 갈망했다. 갈망은 영영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영영 면할 길 없는 굶주림에 익숙해진 나머지, 정말로 뭔가가 먹고 싶은 상태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ㅅ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쪽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오직 삶이 내 마음을 저민다. 사람들은 보통, 완전하게 자신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산다는, 그런 생각을 꿈에서라도 하는 사람을 갖고 있지 못했다. 다들 자신의 사람을위해서는 무엇인든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친절할 뿐이다. 나는 타인들의 존중을 불러일으킬만한 자질이 있다. 하지만 애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불행히도 나는 내 첫인상이 야기하는 존중심을 지속시키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나를 높이 평가하던 사람도 그 감정이 진심어린 존경으로 발전하는 경우란 한번도 없다. 종종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혹시 고통을 쾌락으로 느끼는 건 아닌지. 그러나 고통말고 다른 종유의 쾌락이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나는 무리를 이끄는 수장의 자질을 타고 나지 못했고, 그런 수장을 따라가는 무리의 자질 또한 갖추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재능이 전혀 없는 상화에서도 나름 뛰어난 가치를 발휘하는 재능, 즉 맞곡할 줄 하는 재능조차 없다. 다른 사람, 나보다 이해력이 덜한 사람들이 나보다 강하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식에서 훨씬 더 능숙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효과적으로 운영한다. 반면에 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으나 단 두가지, 그 조건들을 실행에 옮기는 기술과 그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결여되어 있다. 설사 내가 사랑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 사랑은 보답받지 못하리라. 내가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즉시, 그 대상은 시들어 소멸하고 만다. 하지만 내 운명 자체는 크게 치명적이지 않다. 다만 뭐든지 나와 관련되기만하면 치명적으로 변하는, 이 약점이 문제다. ---「텍스트429」
누군가 나에게 내 영혼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사회적 근거를 들라고 한다면, 나는 말 없이 거울을, 옷걸이를, 그리고 만년필을 가리키겠다. --「텍스트457」
내 그리움의 가장 큰 대상은 잠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저긴 잠처럼 때가 되면 당연히 찾아오거나 설사 질병으로 인한 것이라도 결국은 신체에게 평온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하는 잠이 아니다. 삶을 잊게 해주고 꿈을 선사한다는 이유로 긍극의 체념이라는 평온한 지참물을 들고 우리의 영혼으로 다가오는 그런 잠이 아니다. 아니다. 그 잠은 잘 수 없는 잠. 눈꺼풀을 닫지는 않으면서 무겁게만 만드는 잠이면서 불신의 입술을 씁쓸하게 비틀면서 혐오스러운 인상을 지어보이게 하는 잠일 뿐이다. 그것은 영혼의 오랜 불면 상태에서 육체에 헛되이 가해지는 그런 잠일 뿐이다. --「텍스트 465」
"어느날 내가, 모든 예술을 하나로 합한것만큼 천재적인 필력을 부여받는다면, 그대 나는 잠을 위한 찬가를 쓰겠다. 나는 잠보다 더 뛰어난 삶의 쾌락을 알지 못한다. 생명과 영혼의 완전한 소등상태, 다른 모든 존재와 인간의 완벽한 배제, 기억도 환상도 없는 밤, 과적도 없고 미래도 없는 시간."
"많은 사람들이 오직 지루하기 때문에 일을 하듯이 때때로 나는 아무 할 말이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나는 꿈꾸는 상태에 빠진다. 생각하지 않는 자라면 그런 백일몽 속에서 자신을 잃겠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잃는다. 나는 산문으로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 삶은 현실의 조건때문에 위축되어 있다. 나를 얽매는 계약을 좀 해결해보려고 하면 어느 새 같은 종류의 새로운 제약이 나를 꽁꽁 결박해버리는 상태이다. 마치 나에게 적의를 가진 어떤 유령이 모든 사물을 다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내 목을 조르는 누군가의 손아귀를 목덜미에서 힘겹게 떼어낸다 그런데 방금 다른 이의 손을 떼어낸 내 손이. 그 해방의 몸짓과 동시에. 내 목에 밧줄을 걸어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밧줄을 벗겨낸다. 그리고 내 손으로 내 목을 단단히 움켜쥐고는 나를 교살한다."
-참혹하고도 가열찬 불안과 상념이 범람할 때 그리하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듯한 상태가 될 때 그 무게로부터 완전히 달아날 수만 없다면 달아나는 일과 가장 닮은 행위는 그것에 대하여 무방비하게 감각하고 그걸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
-이 엉망진창인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를 포기할 권리, 삶의 숭고함에 나를 헌납하여 삶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체념을 선택할 권리, 그러니까 한없이 나약할 권리, 끝없이 불안할 권리, 권태로울 권리와 공허할 권리, 그리하여 질 나쁜 인간의 세상과 거리를 두고 질 좋은 고독을 향유할 권리를 얻어낸 쾌락이었다. 짐작과는 다른 층위의 행방을 맛본 쾌락이었다.
-저항하는 것은 작가의 여러 특징 중의 하나다. 작가는 무엇에 저항하는가? 그것은 어떤 특정한 정당도, 특정한 이념도, 구체적인 어떤 체제나 심지어 지상의 불의나 부조리조차도 아니다. 작가가 저항하는 것은 고독하게 태어난 인간의 운명이다. 노래하는 것은작가의 여러 특징 중의 하나다. 작가는 무엇을 노래하는가? 작가는 행복이나 충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노래하는 것은 고독하게 태어난 인간의 운명이다.
-그 무엇도 아닌 페소아적인 감각과 페소아적인 꿈의 질감을. 단 한번도 똑같은 반복하는 법이 없는, 이 세상의 모든 다른 것과 구별되는 테주 강 위 구름의 색채를. 이미 존재하는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부조리한 시선을. 깊은 밤 비스듬히 내리는 빗줄기를. 수많은 색으로 해체되는 감각과 느낌들을.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봉인된 삶이라는 현상의 비밀을.
"우리는 오직 우리의 감각만으로 '실제'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감각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며, '의미한다'는 것 역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며, '감각'이랑 어휘 자체에도 아무런 의미가 들어 있지 않고, '의미가 들어있다'는 말 역시 의미를 가진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의 동일한 비밀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뭔가 의미할 수 없음을, 혹은 비밀이 어떤 의미를 가진 어휘가 될 수 없음을 느낀다. " ---<불안의 서>에 관한 페소아의 메모 중에서
-이 책이 마지막을 덮을 무렵 우리는 이미 페소아라는 이름에 모든 것이 들어있음을 설명없이 깨닫는다. 페소아는 페르소나이며, 가면이고 헉다. 즉 페소아는 모든 것이며 동시에 그로 인하여 그 누구도 아니다. 그는 우주 제체만큼이나 복수다. 페소아는 끊임업시 분열되고 와해되는 작가의 정신, 보조리하게 술렁이는 불가능의 숲을 향해 영원히 산란하는 작가의 영혼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페소아는 거기에서 왔다. ㄱ대 로마의 극작가 티투스 마키우스 플라우투스가 암시했듯이 노멘 에스트 오멘, 이름은 하나의 징후이다.
-열정이 배제된, 고도로 다듬어진 삶을 살기. 이상의 전원에서 책을 읽고 몽상에 잠기며, 그리고 글쓰기를 생각하며, 권태에 근접할 정도로 그토록 느린 삶. 하지만 정말로 권태로워지지는 않도록 충분히 숙고된 삶. 생각과 감정에서 멀리 벗어난 이런 삶을 살기. 오직 생각으로만 감정을 느끼고, 오직 감정으로만 생각을 하면서. 태양 아래서 황금빛으로 머문다. 꽃으로 둘러싸인 검은 호수처럼. 그늘 속은 독특하고도 고결하니, 삶에서 더 이상의 소망은 없다. 세상의 소용돌이를 떠도는 꽃가루가 된다. 미지의 바람이 불어오면 오후의 대기 속으로 소리없이 날리고, 고요한 저녁빛 속 어느 우연한 장소로 내려앉는다. 더욱 위대한 사물들 사이에서 자신을 망각한다. 이 모두드를 확실하게 인식하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슬러파지도 않는다. 햇살을 주는 태양에게 감사하고 아득함을 가르켜준 별들에게 감사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 굶주린 자의 음악. 눈먼 자의 노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방랑자의 기억, 사막을 가는 낙타의 발자국. 그 어떤 짐도 목적지도 없이.:
"타인을 지배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타인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우두ㅁ머리는 종속된 자이다. 외부요인을 자신에게 전혀 첨가하지 않고 개성을 확장한느 법. 타인에게 뭔가를 부탁하지도 명령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타인이 필요한 경우, 직접 타인이 된다. 우리의 욕구를 최소한으로 끌어내리기. 어떤 점에서도 타인에게 종속되지 않도록. 절대적으로 그런 삶은 분명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꿈꾸기 위해서 나는 잠을 잔다. 존재할 수 있는 것을 꿈꾸기 위해서,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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