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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누하우동], 기억과 추억

by 발비(發飛) 2014. 2. 7.

이 곳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촌이라고 하지 말자.

현재라고도 하지 말자.

2009년 3월로 시간이 돌려졌다고 생각하자,

이 곳을 오사카라고 하자... 싶었다.

 

 

행정구역이 어딘지 모를 골목을 누비다 주택가 한 귀퉁이에 이자까야 [누하우동]이 있다.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어, 몸이 점점 으슬으슬해진다.

따뜻하게 데워진 사케를 담은 도쿠리를 두 손으로 감싸안고, 한 잔 한 잔 잔을 세어가며 시간을 천천히 보내고 싶었다.

나무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테 안경을 쓰고, 제법 남자답게 생긴 주인이 어서오라고 웃는다.

나도 웃는다.

너무 작았다.

가게 안에 테이블은 두 개,

하나는 외져서 마치 방인듯 보이는 곳에, 하나는 주인의 주방 앞에 있다.

당혹스러울만큼 작고 복잡한 가게를 둘러보는데,

둘러보는 시선 여기저기에 주인이 걸려 눈이 마주친다.

그는 웃지 않을 것 같은 얼굴 생김으로 자꾸 웃는다.

서비스! 서비스! 머릿속에 서비스, 좋은 거구나 생각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며, 그 곳에서 몇 분을 걸으면 나오는 정부기관이나,

좀 더 걸으면 나오는 현대건설에 어울릴 것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한국일보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라는 생각도 했다.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는 내게 그는 알바가 아직 오지 않았고,

6시부터 영업시작이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볶음류는 안된다고 한다.

메뉴 맨 끝에 있는 볶음우동이 생각났다.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난거다.

기억때문에 보고 싶었다. 냄새가 맡고 싶었다. 기억은 거의 그리움으로 변이되는 듯 하다.

그리움은 오감에 밀착되어 있는거겠지 싶다.

대부분의 그리운 것들은 보고 싶거나, 만지고 싶거나, 안아보고 싶거나.. 몸과 붙이고 싶다.

기억은 그렇게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몸의 감각을 불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억하는 것들을 몸으로 다시 느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 될까? 다시 그리움?

좀 깊게 많이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을 덮는다.

주인에게 메뉴는 좀 있다가 고르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따뜻한 사케를 부탁했다.

그가 바 앞에 진열해 놓은 사케 대병에 이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사케의 주인은 없는 것이다.

오사카에 있는 그녀의 사케집 [가베]은 달랐다.

큰 대병마다 하얀 종이에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다음에 와서 마실 술, 이름표를 단 길다란 사케병들이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는 다른 표정으로 기다리고 각기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그랬다.

 

 

그 여자는 오전 11시에 볶음우동을 만들었었다.

나는 그 시간에 사케를 먹으러 그곳을 간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러 그 집에 갔다.

그 여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두시까지는 커피를 팔았다.

그래서 나는 오사카에 있었던 2주 동안 매일 아침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여자가 볶음우동을 만드는 소리,

그 여자는 같은 시간에 같은 냄새가 나는 볶음 우동을 매일 만들어 먹었다.

기름에 면이 튀는 소리, 야채가 들어가 지글거리는 소리, 긴 나무젓가락이 후라이팬을 긁는 소리  

그리고 맑고 고소한 커피향 위로 퍼지는 볶음우동 냄새.

여자가 우동을 먹기 시작하면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전철이 지나가는 고가도로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침을  넘기는 소리가 그녀가 듣지 못하도록 큰 소리를 내는 전철이 지나갔으면 싶었다.

나는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볶음우동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볶음우동에 매료되었다.

누군가가 음식을 만드는 소리, 먹는 소리, 공간에 가득 고이는 냄새.

아마 그때 그리운 것은 그것이었나보다.

시사모튀김을 안주로 시키고,

혹 누군가가 손님으로 들어오면, 하는 마음으로 외진 방으로 들어갔다.

 

 

언뜻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방의 전면에 비틀즈가 우동도 먹고, 초밥도 먹고, 튀김도 먹고 있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하늘이 없다고 상상해봐요. 당신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이에요.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발아래는 지옥이 없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이 있겠죠.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모든 사람들이 이날을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 too.                          살인이나 죽음도 없고 종교도 없는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내가 공상가라고 당신은 말할지 모르지만 나만이 그런 건 아니에요.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내가 공상가라고 당신은 말할지 모르지만 나만이 그런 건 아니에요.

 Imagine no possesions, I wonder if you can.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당신이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탐욕과 굶주림에 대한 필요도 없고 인류애로 뭉치는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온 세상을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눈다고 상상해보세요.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내가 공상가라고 당신은 말할지 모르지만 나만이 그런 건 아니에요.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언젠간 당신도 우리와 함께해서 세상이 하나 되어 살기를 바래요. 

-john lennon-imagine 

 

 

 

[누하우동] 주인이 가져다준 따듯하게 데워진 사케는 온 몸을 녹여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몸은 여전히 으슬으슬거린다.

다만 안주로 시킨 시사모튀김은 고소한 첫맛이 반가웠지만, 두 개까지 다 먹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가게에 가득하던 볶음우동의 냄새, 그 기억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 곳을 나왔다.

마침 09번 마을버스가 멀리서 오고 있었다.

핸펀 카메라를 열어두고 버스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지나가는 것 속에 기억을 겹쳐보고 싶었다. 그것은 어떤 느낌일지,

버스의 두겹 유리창 속에 검은 테 안경을 쓴 주인이 있는 사케집이 있다.

지나가는 것과 멈춘 것이 하나가 되었다. 그저....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이 곳을 09번 마을버스가 다니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촌이라고 하지 말자.

'현재'라고도 하지 말자.

내가 원하는 어느 시간이 돌려졌거나, 앞으로 나갔거나, 시간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자.

아까와는 달리, 반드시 오사카일 필요도 없겠다. 

왜냐하면, 내 기억과 추억은 이미 그곳에 있지 않을테니 말이다.

 

다시 만나 보듬어봐도, 그것은 사라진 한 존재일 뿐이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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