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이성부] 바위의 말

발비(發飛) 2006. 5. 16. 20:35

바위의 말

 

이성부

 

먼발치로 바라만 볼 것 아니라

새봄 가슴앓이 그리워만 할 것 아니라

그냥 내게 오세요

가까이서 내 몸 만지러 오세요

모진 눈보라 비바람에 더 윤기 도는 몸

새로 피어나 향내나고

새 햇볕 머금어 따뜻해요

보이지 않는 부드러움 속으로

어서 들어오세요

칼바위 벼랑바위 바람 이는 바위

무서워하지만 말고

망설이지만 말고

천천히 천천히 기어오르세요

온몸을 솟구쳐 꿈을 펼치세요

나를 가지세요

 

"나의 등에 올라서서 두 팔을 벌리고 만세를 부르세요."

"정말 시원하네요. 여기가 좋아요. 당신이 내 발을 붙잡고 있나요?"

"난 그저 당신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예요. 당신은 그저 웃으세요."

 

 

"나를 붙잡아요."

"무서워요. 당신이 숨쉬지 않아서 다행이예요. 숨소리에도 떨어질 것 같거든요."

"걱정하지말아요. 난 숨쉬지 않아요. 멈춰있어요."

"당신은 정말 따뜻하군요. 당신의 몸속은 더 따뜻하겠죠? 숨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예요."

"그래요. 숨쉬지 않은 것은 움직이지 않아요. 당신이 잡으면 그뿐이예요."

 

 

"고마웠어요. 전 갈께요. 다음에도 당신은 여기 그대로 있겠지요. 잊고 지낼 것 같아요. 미안해요!"

 

-2006. 05. 14. 경남 합천 황매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