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아버지의 뇌5

발비(發飛) 2006. 3. 1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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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속이 좀 상했다.
그저 속이 좀 상한다.
 
신이 생각난다.
분명 신의 존재가 느껴진다.
난 신의 존재를 느끼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조종되는 듯한 느낌이 싫다.
지금도 기도를 하려한다.
난 기도를 하고 싶다.
하지 않을래. 그렇게 않을래.
이제 신과 좀 떨어지고 싶다.
 
난 신을 원망한다.
아니 어쩌면 신이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 항복하면 안되겠니? 하시면서 나를 슬픈 눈으로 보실 수도 있겠다.
 
신은 나에게 특별히 뭘 원하는지.
마치 신내림굿이라도 받으라는 것인지.
 
시련!
 
나에게서 우리 가족에게서 가족 한 명을 뺐아갔다.
남들은 그 분이 데리고 갔다고 하지만, 우린 신에게 빼았겼다.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을 이기는 데 우리 식구들은 지금처럼 버텨내었다.
 
시련!
 
나에게서 만나지 못할 가족을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선택할 수도 없게 만들어주셨다.
너 어쩌나 보자시며 팔짱을 끼시더니, 나를 노려보신다.
난 그때 신에게 무릎을 꿇었었다.
안 그럴께요. 하고 신에게 엎드렸다.
 
시련!
 
신을 만난다는 것은 이 두 가지의 시련을 만나는 것과 같다. 적어도 나에겐
신을 만나는 자리에는 이 두 가지의 시련이 항상 함께한다.
이제 내가 만났던 두 가지의 늪에서 나오고 싶어 신을 잊기고 했었다.
그리고 신을 생각하지 않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저 인간인 나로 그저 살아보자 생각한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너 나에게 올래?
하고 아버지를 볼모로 ....... 싫다!
 
왜 신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지.
내가 아버지 옆에서 웃고 떠들고 즐겁게 이기자고 힘을 쓸 때마다,
너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 하고 가소짓을 하는 신의 모습이 문득 보이는 것이지.
난 끝까지 웃어줄 것이다.
괴롭히면 괴롭힐 수록 난 말을 많이 할 것이고 떠들것이고 난 버틸 것이다.
 
슬프고 아프다.
아버지가 아픈 것이, 그 뻥 뚫려 버린 두 자리의 뇌가 눈에 보인다.
그 큰 자리가 비어있다.
 
그래 어쩌면 그 자리는 신과 상관없을 지도 모른다.
그저 아버지가 잊고 싶었던 나와 공유했던 우리 가족이라 겪었던 일들이 기억된 곳,
그 곳이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지만,
잃어버린 내가 의학적으로는 평형감각을 관장하는 곳이라지만,
난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아버지가 아팠던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많이 아파서 지금도 문득 떠올리며 어둔 얼굴이 되는 생의 한 부분이 그 곳에 머물다가
이제 아버지의 곁에서 떠났다고 그렇게 믿자.
 
그것이었으면 좋겠다.
울 아버지가 또 하나의 시련을 겪는 것이 아니라, 시련들을 제거시킨 것이라고 우기고 싶다.
 
신과의 관계이든
아버지와의 관계이든
아버지의 뇌와의 관계이든
나의 궤변이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 오늘도 웃으며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그런데 오늘밤 혼자서 웃기엔 좀 힘이 빠진다.
오늘밤 그냥 죽을상을 짓다가 내일 아침 아버지를 만나면 다시 웃음이 이쁜 딸로 돌아가야지.
잠시만 우울하자!
ARTICLE

 

 

2006.03.18

 

오늘도 아버지의 뇌는 아주 잘 견디어주었다.

어제보다 길이 잘 들은 듯 두통이 좀 나아지신 듯 하시단다.

일어나 계시는 시간이 좀 길어지신다.

 

늦잠을 자기로 하고 정말 늦잠을 잤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에 갔더니, 두 분이 주무신다.

친구와 같이 갔는데...

울아버지 엄마는 침대와 보조침대에 각각 누워 손을 잡고 주무시고 계신다.

친구는 웃는다.

나도 웃는다.

두 분의 잠든 모습이 참 좋아 몰래 다시 병실을 나왔다. 좀 더 주무시라고....

친구는 부러워한다.

두 분이 저 연세에 어떻게 저렇게 손을 잡고 주무시냐고...

그렇지 좀 그런거지. 우리에겐 일상인데...

 

 

아버지께서 신문을 보신다.

며칠 째 신문을 보시지 못하시다가 참 오랜만에 신문을 들고 계신 아버지를 뵈니.

신기하다.

아버지께서 신문을 다시 보신다.

누군가 아픈데가 없나 살펴보시고, 누군가 같이 기뻐할 일이 없나 살펴보신다.

 

 

어제 아버진 열이 조금 났었다고 했다.

회진때 재발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못내 걱정이 되었었나보다.

그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듯 하더니, 밤에 열이 좀 났단다.

엄마가 의사선생님께 아버지가 그런 것에 예민해지셨으니, 다시 맘을 편하게 돌려달라고 부탁을 하셨단다.

의사선생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건 그걸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교수법이었다고

아버지를 안심시키고 가셨단다.

아마 아버지는 그렇게 좀 나아지셨겠지만, 그래도 맘 한 쪽에는 불안하실 것이다.

문득 뵙는 아버지의 얼굴이 짠하다.

 

 

 

내가 참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나를 더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내가 심심해서 카메라로 아버지의 얼굴을 거의 백장 가까이 찍어대며 있는데도 그저 상관도 않으신다.

너 내가 사준 카메라 가지고 참 잘 갖고 논다. 그러신다.

난 아버지에게 딸이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 갖고 잘 노니까 너무 좋지요. 하고 말씀 드렸다.

잠시만 조용히 있으면,

"심심하다. 너 좀 떠들어라."그러신다.

"아 입 아퍼!"

"입이 좀 아퍼도 떠들어줘라. 내가 심심하잖냐..."

그럼 난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한다.

 

 

병실 창 밖으로 해가 지고 있다.

오늘 하루가 무사히 가고 있는 것이 대견하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이 하루를 견디어내는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밟아대는 듯한 느낌이다.

이른 봄

지금쯤 보리 밟기를 할텐데. 마치 그것처럼 밟고 밟고 밟는다.

자라는 무엇인가를 밟아 땅속의 근원을 단단히 하는 것.

끊임없이 부지런히 밟아대는 하루이다.

밟는다는 것은 입으로 밟는 것이고 생각으로 밟는 것이고, 어떤 것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그래서 단단히 박히도록 ,,,, 그냥 땅을 디디는 것이 아닌 야무지게 밟아내고 있는 것이다.

밟은 자리를 또 밟고 다지고....

 

 

엄마의 시계는 집이나 병원에서나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부터하고 화장하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하신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나면 세수를 하고 스킨 로션을 바르면 공식적인 엄마의 일정이 끝나는 것이다.

이 곳에서도 똑같이 엄마의 시간표대로 움직인다.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다.

 

"난 세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보도에 따르면, 우리가 접하는 보도들은 남편이 아프면 아내는 도망가고, 아픈 사람은 버려지고..

그렇다는데,

이 병실을 보면 세상은 참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 입증이 된다.

저 옆의 15년 결핵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의 부인인 할머니는 공군통역장교출신이라는데 그 기간동안 헌신적으로 남편을 바라지 하고 있으며,

또 건너편의 환자는 ??(내가 잊었다)병으로 10년째인데 저 부인도 남편의 병상을 지키고 있다.

여기 니 엄마도 이렇게 내 옆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듣는 보도보다는 우리같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안 그러냐?"

 

아버지는 옆에 있는 엄마가 고마운 모양이다.

뜬금없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그런 모양이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지고, 저녁도 먹고 간식도 먹고

아버지는 신문을 좀 더 보시고 난 그런 아버지를 앵글 안에다 넣어 찬찬히 보는 것에 재미를 들이고

창에 비친 아버지와 나를 보며,

그저 어느 날처럼 오늘도 어느 날처럼 그냥 그런 날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이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단 하루의 어떤 날일 것이다.

 

창으로 비친 아버지가 평화롭다.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