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잠시 딴 이야기-
대학로 이음아트서점에서 '신현림시인의 독자와의 만남' 을 오늘 저녁 6시에 한다.
참 많은 책을 내신 분,
그것도 베스트셀러로다가.....
어찌 된 판인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작가라면 볼 적도 없이 본 듯하고, 그것이 좀 껄쩍지는 한 느낌이 든다.
아마 이 분의 '싱글맘 이야기'를 서점에서 서서 본 기억때문에 같은 부류로 엮었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석에 박힌 멋진 시 구절들을 찾아다닌 것으로 난 좀 다르고 싶었었다.
신현림이라는 시인을 보지 않았던 것은 나의 감정 사치가 한 몫을 한 것이리라 싶다.
몇 주 전 부터 이음의 행사를 알고는 짬짬히 그 분의 시라던가 수필 형식의 글이라던가
사진집이라던가를 후루룩 읽었었다.
그냥 그저 그랬다.
난 항상 평균수위보다 업된 상태에서 이런 주절거림을 하면서
그 분의 감정이 과다노출된 글(오로지 혼자만의 생각이다)을 보면서
"뭐야, 이렇게 할 소리 다 해도 되는거야. 시인이면서..."
"시인은 누르고 누르고 눌러서 독자가 한 번 눈길만 줘도 툭 터지는 그런 글을 써야 하는거 아니야!"
토요일 오전
맘이 한가하다.
오늘 만나야 할 사람들을 생각한다.
신미식작가님,
이 분은 뵈었으니까.... 그리고 물처럼 투명하게 받아들인다.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 분이다.
그 분이 혹 나를 보시더라도 이젠 낯을 가리거나 가슴이 쿵덕거리지 않을 것이다.
물처럼 투명하게 보이면 된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익숙해지는 것이다. 익숙해져서 투명하게 보이고 보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보는 대로 보고, 보여주고... 골치 아프지 않은 만남이다.
신현림시인님
이 분은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사이버 문학광장'에 나오셔서 말씀하는 것을 두 번 들었다. 목소리만 들은 것이지만... 그래도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분을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것 뿐이다.
오늘이 계기가 되어 마음을 열고 신현림시인을 만나고자 한다.
사실 마음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오늘 아침 만난 시 한 편에 맘을 열기로 했다.
-잠시 아닌 긴 딴 이야기 끝-
바다...
어릴 적 바다가 생각난다.
난 다섯 여섯 살때 바닷가 근처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교편생활을 그 곳에서 하신 것이다.
엄마는 우리를 밖에 내 보내시지 않으셨다.
가게자리인 집에서 살았었는데,
가게를 한 것이 아니라 가게가 있어야 할 공간에서 우린 놀았었다.
유리문 밖에는 거지가 참 많이 다녔다.
엄마는 아마 우리가 그 곳의 탁한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 싫었나보다.
우린 라면땅을 한 봉지씩 들고 우리 남매들끼리 가게 안에서 놀았다.
가게 안에는 엄마가 어디선가 가져다 준 모래인지 톱받인지가 있었다.
바다...
여름이 되면, 해수욕장으로 버스가 우리집앞으로 다녔었다.
그 버스의 기사분을 부모님이 아셨나보다. 우린 아침밥을 먹으면 그 버스에 타고 바닷가에서 놀았다. 모래장난을 하고.. 아주 오래동안
기사아저씨가 우릴 부르면 그때가 집으로 가는 시간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사람이 많지 않은 바다였다)
그래서 난 바다하면,
어린 시절 바닷가 근처의 가게 딸린 집과 버스를 타고 갔던 바다의 모래가 생각이 난다.
까끌까끌한 모래가 생각 난다.
시인은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바다를 보던 그를 보면 내가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던 그를 보면 내가 나무를 닮고
난 바다를 닮았고 나무를 닮았고
그는 또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이젠 모른다.
난 아직 바다를 닮고 나무를 닮았는데...
시인은 먼 데를 보는 그를 아직도 사랑하나보다.
먼 데를 보는 사람은 사랑하면 안되는데 그걸 아직도 모르나보다.
함께 한 시간이,
먼 데를 보는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그 시간도 사랑이라고 말하고픈 ...... 하지만 그리 마소서!
-잠시 또 딴소리-
난 항상 틀린다.
아니 변한다.
어젠 나의 시인이 아니었는데, 바다를 보며 쓴 시에 나의 시인이 된 분을 오늘 만난다.
난 그 분을 나의 시인으로 만드었으면 싶기도 하다.
보이는 대로 보는 투명한... 그런 나이고 시인이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잠시 또 딴 소리 끝-
어디에도 없는 사람
나를 중심으로 도는 지구는
왜 이렇게 빨리 돌지
우리가 세상에 존재했었나
손 닿지 않는 꽃처럼 없는 듯 살다 가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 같아
생애는 상실의 필름 한 롤이었나
그 쓸쓸한 필름 한 롤
불빛 환해도 길을 잃기 일쑤고
축제가 열린다지만
축구공만한 해는 내게 날아오지 않고
네 메일 왔나 클릭하면 스팸메일만 가득하고
꿈꾸던 등대는 물살에 잠겨간다
더는 우릴 묶을 끈도 없이 되도아올 것도 없이
창 밖엔 흰 머리칼 더미가 휘날려 가
가혹한 세월에 축배
잊어도 기억나도 서글픈 옛 시절에 축배
지루하고 위험한 별거 생활에 건배
지치게 하는 것과 끊지 못하는
어정쩡한 자신이 몹시 싫은 날
할 수 있는 건 갈 데까지 가보는 거
피 토하듯 붉게 울어보는 거
또 다른 삶을 그리워하다
거미처럼 새까맣게 타서 죽어가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