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비(發飛) 2005. 12. 25. 07:00

 

 

-소리-

 

뭉크만큼 성탄과 어울리지 않는 화가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 아침 뭉크의 그림을 본다.

성탄의 밤을 학교때 성당에서 밤을 새웠듯,

아니 방법은 좀 다르지만, 영화 세 편의 주인공들을 따라 다니며 밤을 새웠다.

영화를 통해서 기도를 했다면 말이 되나.

기도가 나를 돌아보는 것이라면, 영화를 보는 것도 나를 보는 것이니까....

 

뭉크의 '소리'라는 이 그림을 생각한 것은 영화 '바이브레이터'의 여주인공이

머리에 떠나지 않아서이다.

나도 주인공처럼 참 많은 소리를 듣는다. 들어야만 한다. 들으라고 강요받는다.

 

정보, 소문, 수다, 독서, 대화, 기계음, 음악....

 

그 많은 소리들이 한꺼번에 나에게서 충돌될 때도 있다,

그럼 아무 소리는 들리지 않아 화가 나고 절망한다.

 

뭉크에 그림에 나오는 하얀 옷을 입은 여자

얌전하고 평범해 보이는 여자

호숫가인지 강가인지의 나무숲에서 홀로 있다.

그런데 소리란다.

뭉크는 들리지 않는 소리에 집중한 것일까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한 것일까

 

난 오늘 영화 주인공을 따라가기로 했으므로

그동안 나에게 입력되어있던 수많은 종류의 소리에 대한 환청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고요한 곳

정적 속에 있어도 끊임없이 들리는 환청들

환청들은 아니 환청으로 들리는 소리들은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소리들이다

 

내게 어떤 소리가 들리면 난 반응해야 한다

소리가 들리고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적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소리든 소리는 내게 명령인 것이다.

그림 속의 여자

하얀 옷을 입고 정숙해보이는 저 여자는 고요속에서도 누군가의 명령을 듣고 있는 듯하다

내가 그렇게 본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어떤 차라도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삶에 잠깐 편승하여

소리를 떨구고 다시 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고요한 호숫가가 진정 고요할텐데

아무런 명령어도 들리지 않는다면, 저렇게 긴장된 모습으로 똑바로 서있지 않아도 될텐데...

소리가 없는 세상이 그리운 여자

나도 소리가 없는 세상이 같이 그리운 여자.

 

성탄밤을 보낸 오늘 난 뭉크의 그림을 보았다

진정 고요함을 맛볼 수 있는

내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나 자신이 그냥 자연이 되는 며칠을 꿈꾸며

뭉크가 그린 일그러진 얼굴들을 생각한다.

 

쫙쫙 펴지는 나의 얼굴을 생각한다.

 

 

 

 

-눈 속의 빨간 집-

 

사람이 없어 평화로운 뭉크의 그림

내가 뭉크의 그림 중에서 좋아하는 그림

마치 강원도 어디 시골의 풍경같은 ....

멀리서 보면 하얀 눈이 더욱 하얗게 보이는 내가 좋아하는 그의 그림.

 

하얀 눈 저 멀리 비치는 새벽 불빛

발자국 소리 자박자박 내며 걸어들어가고 싶은 집.

 

그 집으로 동 튼 새벽 들어간다.

이제 자야 할 것 같다

 

난 지금 서울의 한 귀퉁이 어느 작은 집에 있지만,

단 1분동안 저 그림을 보며, 나에게 최면을 걸것이다.

그리고 저 집으로 들어가 편한 단잠을 잘 것이다.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그런 잠을 잘 것이다

 그 시간동안 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