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갈대

발비(發飛) 2005. 12. 16. 02:22

 

 

지난 가을 울릉도 트래킹때 나리분지에서 찍은 갈대다.

바람과 비구름인지, 안개인지 작은 물방울들이 온 몸으로 스미는 분지를 걸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가운데에 분홍갈대들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보라에 가까운 분홍빛 갈대

구름에 바람에 소리도 없이 흔들대고 있었다.

참 다행이다.

단 하나의 갈대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가늘고 여린 것들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갈대 한 가지를 보면 그냥 연갈색잎을 가졌지만

한데 어울려 분홍빛을 내고 있는 갈대들이 소복했다.

참 다행이다

문득 잠을 자려다 말고 울릉도에서 본 갈대가 생각났다

가녀린 갈대지만, 소복히 모여 예쁜 색을 내고 있었던 나리분지의 갈대가 다시 보고 싶어

불을 켜고 컴을 켜고 파일을 찾아 사진을 올려본다.

내가 본 갈대 중 가장 아름다웠던 갈대들이다.

촉촉하게 젖어있었던 갈대들.

하나 하나에 사연이 없을리 없다.

소복이 모여서 사연은 묻히고 연한 색만 감돈다.

하나 하나의 아린 사연이 소복이 쌓이면 참 이쁜 색이 되기도 한다.

참 이뻣던 갈대들

그저 참 이뻣던 기억에 잠결에 일어나 갈대를 본다.

소복했던 갈대들.

그리울 것 없을 갈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