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목적은 죽음 앞에
2005.3.15
아마 65세정도
그 분을 만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항상 멋쟁이이신 분이다.
그 분이 어제 또 나에게 감동을 주셨다.
공유하는 사람, 그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그런 사람이 좋다
나의 경우는 공유하려고 한 것이 남에 대한 과잉친절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공유한다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 나누는 것....
그것은 남들의 오해를 할 만한 일이더라도
난 아마 평생 그 욕구에 사로잡혀있을 것이다.
나의 천성이므로...
본론으로 돌아와...
그런 분이셨다.
시낭송회에 갔었다.
낭송순서 전에 전하고 싶은 감명깊은 말이 있어서 적어오셨다고 쪽지를 펴신다.
어느 영화감독이 한 말이라면서,
듣는 우리가 기억을 놓쳤을까봐 두번이나 읽어주셨다.
낮은 목소리로
"한 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시면서....
난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난 또 빠졌다. 그게 나다.
난 나의 기억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행사가 끝난 뒤 슬그머니 그 선생님 뒤로 가서 살짝 말했다.
"선생님,죄송하지만, 아까 그 종이 저 주세요...."
그 선생님께서 나를 한 번 쳐다보시더니 웃으신다.
"여기 있어요..."
난 그 선생님의 기념품 하나를 챙긴셈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 쪽지에 적힌 글을 옮긴다.
Andrei Tarkovsky(1932-1986)
The allottoed function of art is not, as is often assumed,
to put across ideas, to propagate thoughts to serve as example.
The aim of art is to prepare a person for death,
to plough and harrow his soul, rendering it capable of turning to good.
예술의 주어진 기능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을 알리거나
하나의 본보기로서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의 목적은 죽음 앞에 사람을 준비시키고,
그의 영혼을 갈고 썰레질하여 선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마 잊지 못할 말이 될 듯 하다.
내 책상머리에 붙여놓았다. 오늘 다시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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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기를 뒤져 옮겨본다.
활자로 기록한다는 것. 이래서 좋다.
쪽지를 기념품으로 건네주신 분의 시를 옮긴다.
빈 방을 나오면서
고창수
빈 방을 나오면서
켜져있는 라디오의 음악을 꺼야 할지
망설인다
아무도 없는 방에
더구나 아닌밤중에
음악이 흘러나옴은 예사일이 아니다
누가 들어와 보아도 이상하겠지만
혼령들의 춤이 벌어질 수도 있는 그 공간에
음악을 켜두고 나옴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에집트 King's Vally에서
설화석고를 다듬는 석고의 손에 번쩍이던
형태가 잡혀가는 그 돌은
심상치 않게 보였다.
이 음악을 어찌하랴
빈 방에 흘러나오는
이 음악을 어찌하랴.
가을밤
시골 시냇물가에
떨어진
별 몇 개를
주정뱅이 두 사람이
허리를 구부려
줍습니다
주워서
산허리 동굴 속으로
던져 넣습니다
그리고는
시냇물 속에
은빛 섞인 오줌을 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