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기형도] 오래된 書籍외 1

발비(發飛) 2005. 8. 19. 22:51

오래된 書籍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되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경력은

출생 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제발 나를 펼쳐줘!

그런 일이 기적이라 할 지라도 난 당신이 나를 펼쳐주길 바래.

나를 열어보고 당신이 떠난다해도 그렇더라도 나를 한 번 펼쳐 줘

누군가 열어주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나의 운명을

당신이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긴다면 ...부탁할께,

펼쳐열어 줘,

책벌레가 다 먹어버린 활자들이겠지만,

아직은 쉼표하나라도 어딘가에 붙어있을 거야

쉼표하나의 눈으로 당신이 사는 세상을 한 번이라도 보고싶어

펼쳐 줘~

난 기적을 믿지 않아.

그런데 기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내가 이렇게 댓구를 한다면, 기형도님이 하늘에서 화를 내실까요?

그 분을 만난지 수년만에 처음 그분의 말을 손으로 옮기고 댓구를 합니다.

검은 것과 너무 가까워 영원히 검은,...

 

사라진 사람은 누구나 그립다

 

 

 

 

입 속의 검은 잎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은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트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걸이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타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삶이다

그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것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서

그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무서웠을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이 보일때가 있다.

그건 단순히 신내림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매일 보면서 그 때는 정직하니까...

 

기형도시인은 무서웠을 것이다.

무서워서 무서웠을 것이다.

난 기형도시인의 시를 읽기가 좀 무섭다.

 

무서워하면서 쓴 그 마음이 내게 넘어온다. 기형도의 시는 맞장구를 칠 수 없다.

당신의 시를 읽으면서 맞장구조차 치지 못하게 만들어두고 가시었나요?

맞장구를 쳤다가

 

나도 온통 검어질까봐

내 입 속에서도 검은 잎이 자라게 될까봐...

 

무서워하며 시를 읽는다

 

 

,

 

단 한번도 "그래 그거야. 나랑 똑같애! "그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