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서정주]漢陽好日
발비(發飛)
2005. 8. 3. 12:13
漢陽好日
서정주
열 대여섯 살 짜리 소년이 작약꽃을 한 아름 자전거 뒤에다 실어 끌고 이조의 낡은 먹기와집 골목길을 지나가면서 연계같은 소리로 꽃사라고 외치오. 세계에서 제일 잘 물들여진 옥색 공기 속에 그소리의 맥이 담기오. 뒤에서 꽃을 찾는 아주머니가 백지의 창을 열고 꽃장수 꽃장수 일루 와요
불러도 통 못 알아듣고, 꽃 사려 꽃 사려 소년은 그냥 열심히 외치고만 가오, 먹기와집들이 다 끝나는 언덕위에 올라서선 작약 꽃 앞자리에 냉큼 올라타서 방울 울리며 내달아 가오.
이 시는 파지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 잡지의 것인가 보다.
서울 북촌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정주의 시를
실어놓았다.
원래 행간이 있는데, 없는 것으로 놓은 것인지.
아니면 행간이 있는데, 모르는 것인지
아무튼 쭉 붙여서 두드려놓았다.
한 장면이 그냥 떠오른다.
열 대여섯살의 꽃 파는 아이. 자전거 뒤에 꽃을 싣고 다니며 꽃을 파는
아이다
아이가 파는 꽃은 작약이다.
난 꽃을 파는 자전거도 작약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북촌에도 가 본 적이 없다.
다만 서정주의 이 시를 읽고 장면은 떠오르는 데 소품들이 상상이 되지 않아
검색을 해보았다.
북촌이라는 곳은 저리 생긴 곳이구나.
(북촌은 무슨 한옥보존구역이란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 멀지 않은 곳이구나...
내리막길, 그러므로 오르막길이 많은 주택가.
그 곳에는 먹기와집에 창호창이 길가로 나와있다.
꽃파는 아이의 연계(이 말도 무슨 말인지 몰라 찾아보았더니 영계와 같은
말이란다.ㅋ)같은
목소리로, 그러니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꽃사세요
한단다.
그 소리를 듣고 동네 아주머니는 꽃를 사러 나온다.
60년대 아주머니가 꽃을 산단다.
그럴 수 있구나. 생각지 못했다. 근데 장미가 아니라 후리지아가 아니라
작약이다.
먹기와 한옥집. 창호문. 작약.
......
그림이다. 동양화다.
그런데, 꽃 파는 아이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꽃 사라라는 제 말만
한다.
그리고 저 높이 언덕길에서 쭉 내려달린다.
빨 간 작 약 꽃 싣 고 달 린 다.
삶은 그리 고요했을 것이다.
꽃 파는 열 대여섯 살의 아이도, 꽃 사려는 새댁도, 그리 고요했을
것이다.
자전거 뒤에 실려가는 작약도 고요했을 것이다.
저녁 햇빛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았을 것이다.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곧 피어오를 것이다.
그 어느집이라도 좋으니, 그 곳 마당에 박힌 수돗물로 세수를
하고
마루에 걸터앉아 두 발을 바닥에 탁탁 굴려보고 싶다.
고요할 것이다.
나무내음과 밥내음이 날 것이다.
내 발은 탁탁 거리며, 그 냄새를 맡고 있을 것이다.
기분 좋게 배가 고플 것이다.
먹어도 배 터질 듯한 거북함은 없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고요할 것이다.
북촌마을 꽃파는 아이가 지나고 있는 그 곳은 고요할
것이다.
그 곳에 가고 싶다.
나도 고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