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이창대] 하늘 외 3

발비(發飛) 2005. 7. 26. 10:57

이창대시인. 그는 1989년 돌아가셨다.

이 시들은 그의 유고시집이라 할 수 있는 [바리데기 신화]라는 시집에 실린 시들이다.

난 이 시집과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나의 눈으로 그냥 고르고 싶어서 골라서 산,

이름을 알 지도 못하는 시인의 시집을 그냥 서서 읽어보고 , 그러니까 시를 보고

처음으로 산 시집이었다.

하지만,

난 이 시집의 제목에 나오는 바리데기처럼

먼 길 먼 길을 찾아다니면서, 살았다.

이 시집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기억이 나는 시도 없다.

다만 이 시집을 산 기억만이 남아있다.

내가 처음으로 교과서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익숙해진 시인의 시가 아니라,

그냥 나의 의지대로 선택한 첫 시집인 것이다.

 

 

哀歌

 

이창대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숨막히는 이별은 말하지 않으리

여기로 불어오느 바람

서러웁고

저기서 울리는 종소리

외로워도

가만히 견디며 들으리라.

커다란 즐거움은 아픔 뒤에 오는 것

흐르는 강가에 가슴은 설레여도

말하지 않으리라 이별의 뜻을

그대 떠난 마음의 빈 자리

아플지라도

나에게 잠들게 하라

너의 그림자들.

 

가수 길은정이 노래로 불렀다는 시이다.

역시 슬프다.

.

애가를 읽으니 슬프기만 하다.

.

 

舞天

 

 

산에 오르니

산이 나를 가지고

 

강에 나아가니

강이 나를 가져버리네

 

해와 별

구름과 함께

한 세월을 지내니

 

이들이

모두를 앗아가버려서

기리던 모습

보이지 않는 곳에

 

부드러운 고요가

춤추듯이

하늘에 가 닿네

 

 

죽으려면,

누구나 죽는 것이라면, 몸을 가벼이 하여 하늘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죽음이 산 자의 입장에서야 슬픈 일이지만,

죽은 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슬픈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한 단락을 끝내는 것이니까.

한 단계를 올라가는 것이니까. 게임에서처럼 급수가 올라가는 것이니깐

한 번 살아갈 때마다, 한 단계씩.

 

시인은 말한다.

산에 강에 자신을 빼앗겼다고, 아니 산이 강이 자신을 가지고 갔다고

이와 나를 없애버려야 하늘로 갈 것이라면, 산과 강에 나를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자신속에만 갇혀서, 내 속에 나를 쌓고 쌓아

돌을 뱃속에 넣어 걷지 못해 죽은 늑대처럼, 내 속에 나만 가득 차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안된다.

 

시인이 그렇게 말해준다

나를 산에 강에 맡기고 춤추듯이 하늘에 올라가라고 한다.

나의 천적은 나인 것이다.

천적인 나를 산과 강에 맡겨버린다. 그리고 난 가볍게 날아간다.

 

그가 하늘에서 훨훨 날며, 춤추고 있는 듯 하다.

 

하늘

 

 

 

하늘의 일을

나는 모른다.

땅이 누워 있듯이

물이 흘러 가듯이

하늘이 흐르며

별이 살고 있는 곳에

하늘 있음을

알고 있을 뿐

 

하늘의 형상을

나는 모른다

땅위의 草木처럼

구름을,

산의 바위처럼

별을 알고 있을 뿐

모른다.

 

빛이 땅에 비쳐

빛 속의 줄기

빛 속의 가지

빛 속의 꽃, 빛 속의 열매

 

形體없는 곳에서 形體를 이루고

하는 일 없이도

즐거움 속에 만들어지고

어둠에 빛이 있을 뿐

 

하늘의 일은

나는 모른다.

 

그는 혹 무서웠을까?

하늘을 자꾸 말하고 있다.

 

그는 혹 기대를 하고 있었을까?

하늘을 말하는데, 지금 보이는 하늘처럼 그렇게 파란 하늘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본 하늘이 무슨 색이었지.

파랗고 투명한 하늘을 본 것이라면, 그 속에 떠 있는 흰 구름의 장난을 보면서

좀 안심했을 듯 한데.

혹 시인은 투병 중,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캄캄한 하늘을 본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하늘의 일을 모른다고 한  것일까?

 

병든 자들에게 맑은 하늘을 보여주는 일.

지금 이 시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이왕 누구나 시한부의 생명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가야할 사람들에게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여주었으면,

때로 회색빛에 맑은 물이 떨어지는 하늘도 보여주자.

 

당신들이 먼저 저 곳에 가 나에게 닿을 그 맑은 물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그들과 나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란 하늘로 맑은 비로 그렇게 서로 닿아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나도 파란 하늘이고 맑은 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보여준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두렵지 않아진다.

하늘이 친구처럼 느껴진다.

시인이 살고 있는 곳이라서, 그 곳이 좋다.

그 곳에서 나도 같이 파란 하늘이 되고 맑은 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時間

 

어느 名工의 솜씨이뇨

 

작은 두 잎파리 돋을 사이

커다란 가람(伽藍) 일으켜 세울 사이

출렁대는 흔들림이 나무에 테를 수놓는

위대(偉大)한 創造者

 

時間, 그것은

 

가끔 바람이었다가

또 가끔은 평화로운 미소이다가

느닷없이 몰아치는 천동소리.

 

꽃은 그사이에 피고 지고

개미들은 그사이를 기어다닌다

 

빛과 함께 하며

늘 新綠의 새 순을 만들고

어둠과 더불어

있는 것을 시들게 하는

偉大한 破壞者.

 

그것은 風景畵속에 녹아 있다가

도도한 홍수로 흘러나리고

어떤 布告령속에 새겨져있다가

억수의 비로 몰아간다

 

어떤 銅像도 녹여버리고

어껀 記念의 돌도 허물어뜨리는

날렵한 變身者

 

時間, 그것은

 

늘 따뜻한 빛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여물게 하는

豫感하는 完成者

 

 

시에 대한 첫 관심은 그냥 비누방울처럼 금방 터져버리고 말았었다.

바리데기는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드리고자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난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왜 인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바로 시인이 말하는 바로 그 時間이 지난 후 난 다시 시를 읽는다.

처음으로 골랐던 그 시집을 다시 들었다.

時間.

시인이 내게 말한다. 시간이라고 시간은 창조자이며, 파괴자이며, 변신자이며, 완성자이다.

시간이 나를 만든다.

첫 시집을 고르던 시간, 그리고 지금 다시 그의 시집을 읽고 있는 시간.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시간들...

시인이란?

시집을 산 몇 달 전에 시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없었던 시간만큼 어쨌든 난 살았고,

그 시간동안 시인은 세상에 없었지만, 시가 세상을 지키고 있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時間이라는 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