見聞錄

[휴가]개선문 신부님

발비(發飛) 2005. 7. 23. 01:08
개선문신부님!
그 분은 좀 오래된 사이입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그 분은 저희 성당의 보좌신부님으로 오셨더랬습니다.
근데 성당에서 알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서?
오락실!!
 
전 오락실에 다녔습니다.
컴이 없었거든요.
그 때도 벽돌깨기는 고전이었기 때문에 벽돌깨기가 있는 오락실은 딱 한 군데.
전 그 곳에서 벽돌깨기 하는 시간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무아지경. 환상지경이었습니다.
 
항상 벽돌깨기 앞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두 개의 게임기가 있었는데, 한 번도 누가 앉아있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어느날 그 곳에 누군가 앉아있는 겁니다.
나란히 앉아서 무아지경에 빠졌습니다.
한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힐끗 보고, 웃기네! 멀쩡해가지고...
그 사람이 어느 순간 일어났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보좌신부님이네요!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둘 다 빨개졌습니다.
 
며칠 후
성당에 갔다가 나오는데, 신부님께서 부르십니다.
오락실 주인이 성당 신자인데,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벽돌깨기 게임기를 신부님 방에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으면 마음껏 와서 하랍니다.
이제 오락실에 가도 없으니까...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벽돌이 깨고 싶으면 보좌신부님 사무실로 가서 마음껏 깨다가 왔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신부님!
 
그리고 잃어버렸습니다.
어느날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그 신부님은 프랑스로 유학을 가셨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본당신부님으로 와 계십니다.
 
밤나무길 신부님을 만나고 오는 길에 개선문 신부님에게 들렀습니다.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고...
성당 입구에 부레옥잠을 돌확에 키우고 계셨습니다
부레옥잠에 보라색 부레옥잠화가 피어있었구요.
신부님이 그러시는데, 이 꽃은 하루만 핀답니다.
정말 이뻤습니다
딱 하루만 피는 꽃
 
부레옥잠화
남아있는 꽃입니다.
물에서 살면서, 물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 제 몸에 광을 내는 꽃
햇빛아래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개선문신부님이 키우시는 통일이입니다.
그 분에게 "직녀에게"라는 노래를 배웠었는데, 개의 이름을 통일이라고 붙이셨더군요.
정말 순하고 이쁜 삽살개.
무지 무지 큰 ....
딱 제 크기만합니다.
그런데 사진에는 커보이지를 않네요. 진짜 무지무지 큰데....

 

 성당 마당에 핀 꽃.
뭐드라?
잊었다.
뭐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같이 동행한 친구가 야생화박사거든요.
잊었다. 친구야!
다시 가르쳐 줘.
 
벌이 엎드린 채 엉덩이를 쳐들고 꿀을 먹고 있습니다.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지도 모르고 먹기만 하다니...
왠만하면 아는데.
왠만하면 눈치채고 도망가는데,
아마 이 꽃의 꿀맛이 환상인가 봅니다.
 

 
신부님이 성당 마당에 키우는 야생화 설명을 듣느라.
제 친구와 신부님은 야생화 예찬론을 펼치느라 정신이 없고
전 허느적 허느적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사진만 찍어대고 있었습니다.
항상 그렇듯
오랜만에 만나도 금방 만나도
그냥 무덤덤하게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지는 개선문 신부님과의 만남
그래서 오래도록 그 분을 알고 지내나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그리고 멋지시기를.
 
성당을 나가지도 않으면서도
신부님을 만나뵙는 것이 좋고
그런 저에게 성당에 나가라고 한 번의 채근도 없으신 무뚝뚝이 신부님
그런 신부님이 든든합니다.
 
전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휴가3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