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그녀 3

발비(發飛) 2005. 6. 25. 09:49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집에는 살아있는 것이 없었더랬습니다.

그녀는 살아있는 것과의 동거를 싫어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죽을까봐...

그런 그녀는 살아있는 것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화분을 사고, 물고기를 샀습니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있는 것이, 숨쉬고 있는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고기에게 숨을 불어넣어주기도 하고, 화분의 잎사귀를 만져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물고기가 죽었습니다.

그녀는 친구가 물고기를 장례치른 날 밤, 아니 새벽 일찍 일어나, 살아있는 것들을 봅니다.

화분을 보았습니다.

아직은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영원히 , 아니 자신이 살 수 있는 만큼 그 화분이 살 수 있게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화분을 봅니다. 이쁩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습니다.

일찍 출근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메모를 씁니다.

 

"잘 키워주세요. 아주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메모를 써서 화분에 붙이고, 화분을 안고 현관을 나섭니다.

경비실앞,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 화분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잘 자라라고, 나보다 나은 주인을 꼭 만나라고...

 

퇴근길에 경비실 앞에 화분이 없습니다.

누군가 좋은 사람, 부지런한 사람, 생명을 잘 거두는 사람이 가져갔을 겁니다.

옆집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결단을 내립니다.

꿋꿋히 살아남은 물고기, 그 한 마리의 물고기에게도 새로운 주인을 만들어주어야 겠다는...

비록 그녀의 직무유기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녀는 또 다른 죽음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는 죽음때문에 물고기를 보내려고 생각했습니다.

밤새 고민을 합니다.

사실 화분과 물고기는 다릅니다. 물고기는 그녀가 어항을 두드리면, 파다닥거리며 움직입니다.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이른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

포스트잇에 메모를 합니다.

 

'잘 키워주세요. 좁은 공간에서도 잘 사는 물고기랍니다."

 

그렇게 메모를 써서 붙이고 , 현관을 나서서 어제 화분을 두었던 그 자리에 어항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잘 자라라고, 나보다 나은 주인을 꼭 만나라고...'

 

그녀는 압니다.

자신의 이기심때문에 생명들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을...

 

그녀가 살아가는 방법은 도망입니다.

도망 다니는 여자 그녀는 살아가는데 짐이 있으면 안됩니다.

도망가지 못하니깐,

그녀는 언제나 도망갈 준비를 하면서 삽니다.

 

그녀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