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생일
-생일-
박형준
창호지에 바른 국화,
그늘과 빛이 드나드는 종이 속에
덧댄 작은 유리, 말없이 바스러지는 生.
마당의 해당화와 길과 윗집
대나무 꼭대기에서 기우는 햇살,
저녁이면 방안에 들어앉아, 아버지
창호지의 거울로 세상의 지문들을 바라보았다
발뒤꿈치의 굳은 살을
도루코 면도날로 깍아내며
노래를 부르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저녁의 노래,
징용 가서 배운 노래,
식구들 누구도 따라 배운 적 없는
일본 노래.
창호지에 저녁빛이 스며들고
지문들이 방바닥에 얇게 떨어진다.
아버지 발 뒤꿈치에서 허물이 떨어진다
이스트만 넣고 부풀린 밀가루떡.
아무 맛도 없고 속도 허한 밀가루떡
방학이 되어 시골로 내려가면
슬몃 부엌에서 시루에 쪄
방바닥에 배를 깔고 있는 내게 들이밀던
밀가루떡에서 풍겨나던 옅은 술냄새,
아무도 모르는 노래와 냄새와 맛
방바닥에 스미는 빛에 가려
아버지의 발 뒤꿈치에서 떨어지는
지문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는데,
머리 뒤에 꽃처럼
혹이 달려 있는 아버지,
꽃이 시든 자리에
마당의 해당화는 열매를 맺는데, 아버지
열매를 깨물어 먹으면
내년의 씨앗이 입안에 쏴하게 터질까,
내 미래의 지식들이 아버지의 혹 속에
들어있을까, 다 타서 하얗게 허물어지는
연탄처럼 방안에서 창호지의 유리로
아버지 해당화와 길, 대나무 꼭대기를 내다보고,
나는 아버지의 등 뒤에 배를 깔고
짐짓 마당에 내리는 어둠을 본다.
가을의 첫 잎을 따
창호지에 바른 국화는
빛이 스며드는 종이 속에서 누렇게 바랬고
그늘은 방바닥에
발 뒤꿈치에서 깎아낸 굳은 살처럼
얇개 일렁이는데,
아버지는 노래를 부른다.
자식들 대신 침묵 속에 고치를
틀고 있는 아버지,
저녁빛을 바라보며
청년의 노래를 부른다.
징용 가서 배운 노래,
식구들 아무도 따라 배운 적 없는
낮은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 등 뒤에 배를 깔고
나, 오랫동안 식구들
음식 맞추러 간 사이
지문들이 자잘이 떠 있는
저녁의 노래를 듣네.
신인에게 청탁해준 잡지사가 고마워 이틀 밤낮을 꼬박 시를 써서 보내고 나서야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솥을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간절함 앞에서만 문득 무릎을 꿇어야 하리라
-시인의 말
창비에서 나온 시인의 말이 미리 당겨서 그의 시집을 봤다.
시 한편에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야 밥을 안치는 40의 시인을 상상해본다.
시를 꼼꼼히 읽지도 않았다. 다만 시인의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그 끈질김과 긴장감과 몰입을 생각한다.
더불어 연탄재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이 시인이야말로 자신을 하얗게 태우는 연탄이 아닌가하는
하얗게 완전 연소된 연탄.
그 개운한 연탄이야말로 시가 아닐까 한다. 개운하게 탄 하얀 연탄...
이 많은 주절거림들...에 대한 반성을 해본다.
설 타버린 연탄같은 느낌이다.
어느 골목길에 살림 못하는 새댁이 내어 놓은 검은 색 반 흰 색 반이 그런 연탄
다시 쓸 수도 그렇다고 개운하게 버리지도 못하는 그런 연탄들...
시인의 집앞에 내어놓은 하얀 연탄재가 몹시도 부러운 새댁의 마음이다....
살림을 좀 더 살면 하얗게 태우는 법도 배우려나....
맘대로 읽는 시다.
생일이라는 시는 아버지이야기이다.
그런데 난 언제나 처럼 나의 이야기로 읽는다.
아무도 따라 부를 수 없는 일본군대에서 배운 노래.
가족이나 친구라고 해도, 그리고 목숨만큼이나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도
함께 가지 못했던 징용에서 배운 노래를 알 지 못할 것이고
발 뒤꿈치에 낀 굳은 살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들을 알아주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내가 아프던 날 왜 아팠는지 뭘 하느라 아팠는지 알아주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그 아픔을 같이 하면서 일본군가를 같이 불러주기를 원한 적이 있었다.
내 굳은 살을 같이 불려가며 내 살들을 그들의 손으로 깎아내어주기를 기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그런 적이 없을뿐더러 누구도 나와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안다. 일본징용을 갔던 아픈 추억이나 발뒤꿈치의 굳은 살은 그냥 나일 뿐이다. 그냥 나일뿐이다.
나눌 수 없는 나...
이젠 알 것 같다. 나눌 수 없는 것은 그냥 두는 것이다.
그냥 두고 혼자 흥얼거린다. 흥얼거린다.
내가 흥얼거리는 사이.
옆에 있던 아버지도 흥얼거리고 엄마도 흥얼거리고 오빠도 흥얼거리고 동생도 흥얼거리고..
친구도 흥얼거리고... 낯선 이도 흥얼거리고...
나만 흥얼거리는 노래는 사람에 박자 음색 모두 다른 각자의 징용가들이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결국은 그랬던 것이다.
자기의 노래를 부르느라 남의 노래는 들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내 노래를 부르며 가끔은 남의 노래도 따라부르게 되기도 한다.
누구의 노래인가 힐끗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