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정병근] 내 친구 박원택

발비(發飛) 2005. 5. 31. 14:00

내 친구 박원택

 

정병근

 

그라면 말할 수 있다

불알 두 쪽 차고 서울 올라와

구두를 닦다가 자장면을 나르다가

쇠를 지지다가 전기 기술자가 된 사연,

안 해 본 일 없는 그의 손을 보라

절삭기에 썩둑 잘린 오른손 인지 끝이 부끄러워

사람과 악수할때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왼쪽 손등에는 전기 스파크에 데인 자국

그는 대체로 달리고 데이고 지지면서 살았다

운명의 불똥이 그의 몸을 몇 번씩이나 뚫고 지나갔다

견디다 못한 아내가 도망치자

그는 아이들을 복지원에 맡겨놓고

설비 회사 바닥에서 혼자 자고, 밥 먹는다

내 친구 박원택이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수줍게 웃으면서 술잔 비었다고 말할 수 있다

술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칠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아도 지지리도 복도 없는 그런 인생을 가진 친구가 나에게도 있다.

온 몸에 상처를 가지고

그 상처만큼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술만 마시는 친구가 있다.

시인의 친구 박원택은 내 친구보다는 나은가보다.

때로는 수줍게 웃으면서 술잔이 비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내 친구보다는 나은가보다.

아직은 희망이 있는 사람인가보다.

술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은 나도 그러니까...

술이 좀 취하면 나도 그러니까...

그러니 시인의 친구 박원택은 나 정도 쯤인가보다...

다만 술버릇만..

(그럼 시인은 말하겠군. 넌 그럼 안되고, 내친구 박원택쯤 되야 그럴 수 있다고...

사실 그 말을 하는 것이군... )

내 친구도 오른 손에  왼 손에 온 몸에 상처가 났다.

먹고 사느라 혹은 그냥 사느라..

그런데 수줍은 미소따위는 키우지 않는다.

하루 하루를 술만 먹는다., 술을 먹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으니. 술은 마신다.

그리고 말을 한다. 고래고래 말을 한다.

그리고 술이 깨면 말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다.

난 그 친구가 친구니깐 너라면 그럴 수 있다고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난 생각한다.

너의 옆에 있기가 지겹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그리곤 그 친구 앞에서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조금만 힘내라고...

난 속으로 또 생각한다.

너를 두드려주고 위로하는 것도 지겹다고... 이젠 그만하면 안되겠냐고... 그렇게 생각한다.

술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친구를 집에다 쳐박아두고,

혼자 욕하면서 술을 마실때도 있다.

나에겐

시인의 친구처럼 그럴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는 것이 싫은 친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