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김소월]진달래꽃--역시 내맘대로

발비(發飛) 2005. 5. 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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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3.<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4. -산유화(山有花)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5.<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6. -초혼(招魂)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7.<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8.<왕십리>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뎐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별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겨서 운다.


9.<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있었더면>

나는 꿈 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夕陽)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츰에 저물손에
새라새로운 탄식(歎息)을 얻으면서.

동(東)이랴, 남북(南北)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希望)의 반짝임은, 별빛이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 다리에.

그러나 어찌면 황송한 이 심정(心情)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츳 가늘은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ARTICLE

-진달래 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기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라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사뿐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를 밟고 지나가소서

연분홍꽃잎,지천으로 깔아둘터이니,

즈려 밟고 지나가소서

당신이 밟고 가는 지천으로 깔린 연분홍꽃잎

진물로 꽃분홍이 되고

검분홍이 되고

검게 말라, 진물도 말라 버린 뒤

꽃이 없다 하소서

난 꽃을 밟은 적이 없다 하소서..

지금은 연분홍꽃잎을 지천으로 깔아둘 터이니,

즈려 즈려 밟고 가시오소서

얇은 꽃잎 터지도록 지긋이 즈려 밟고 가시오소서

지난 봄에

지천으로 깔아놓은 꽃잎들,

즈려 즈려 밟고 향내맡으며 밟고...

지나간 .....

분홍꽃 밟은 일이 없다 하더이다.

지지난 봄에

지천으로 깔아놓은 꽃잎들

즈려 즈려 밟고 .....

분홍꽃 밟은 일이 없다 하더이다.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오소서

건너가시오소서

죽어도 눈물아니 흘리오리다.

진물은 흘러 말라 검게 변해도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오리다.

눈물 흘리는 진달래꽃은 없나이다.

 

진달래는

해마다 한송이씩 몸을 더하여 다시 핍니다.

화려하게 더욱 화려하게

지천으로 깔아놓은 꽃잎만큼

해마다 더욱 화려하게 핍니다.

즈려 즈려 밟고 가시오소서,

가시는 걸음에도

진달래는 제 꽃만 피우옵니다.

진달래는 자신의 꽃만 피우옵니다. 해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