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작?
사장님이 열받으셨다.
무지 무지...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하지...
서두를 땐 언제고.."
무슨 말인지 물어볼 수는 없다.
다만 공장장님이 일러주시는 말로는 며칠 전에 나간 책이 반품이 들어올 수도 있단다.
풀칠이 잘못되었는지 종이들이 떨어진다고 출판사에서 항의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하드 양장이니까 그렇지...
난 속으로 웃었다.
처음엔 나도 몰랐으니까...
어떤 것이든 무게를 감당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반책 떡제본...잡지같은 ... 그런 제본은 페이지수가 너무 많으면 안된다.
책이 무거워지면 본드칠한 것이 버틸 수 있는 무게가 있으니까...
그래서 페이지가 많은 떡제본책은 종이를 가벼운 것으로 써야 한다.
미국책들을 보면 두꺼우면서 가벼운 것의 사연이 있는 것이다.
어느정도의 페이지가 넘으면 양장으로 해야하는데.
양장은 표지가 두꺼워서, 표지와 본문 종이가 친하는데
아니 다른 것이 한 몸이 되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제본이 끝나더라도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자신들의 무게를 서로 나누며
쌓아놓아야 한다.
적찹제가 다른 두 종류의 종이를 붙이고,
그들 둘이 서로에게 몸을 의지하는 것이 익숙해질때까지, 무조건
붙여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책들이 한 권씩 따로 나가더라도, 서로에게 붙어있을 수 있다.
영원히.
그 며칠만 잘 견디면 영원히 한 몸으로 살 수 있다.
오늘의 경우,
작자와 출판사에서 재촉을 하는 바람에 쌓아두는 시간이 없어서,
책장들이 뿔뿔이 떨어진 것이었는데...
기술적인 문제를 이야기 한다.
사실 아닌데...
기술과는 상관없이 책 자신의 문제인데..
이즈음이면, 책이 무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인데...
사람만이 한 몸이 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책도 그런 것인데....
몇 권 미리 나간 책들만 종이가 떨어져 나가고,
여기에 잘 쌓여져 있었던 것들은 멀쩡하다.
사장님은 쌓여진 책들을 보여주며, 괜찮지 않냐고 소리지르고,
출판사에서는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소리지르고,
저자는 저급 제본소에서 자신이 책이 나온 것에 대해 자존심을 상해하고....
난
그들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책이 들으면 무지 기분이 나쁘겠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했을 뿐인데.. 온갖 억측을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있는 나와 책.
마치 서로 눈을 맞추며, 한 번 봐 주자. 하고 서로에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이 되겠지.
다시 제작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시간을 주는 것.
풀칠도 제대로 하고. 재단도 제대로 했다면, 기다리는 것.
그게 다음에 할 일이다.
두 손 탁 놓고 기다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