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천상병] 갈대

발비(發飛) 2005. 5. 9. 01:54

-갈대-

 

천상병

 

환한 달 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 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약한 이에게서 받는 위안이 있습니다.

갈대밭에 가면

봄에 갈대밭을 가도

여름에 갈대밭으 가도

가을에 갈대밭을 가도

겨울에 갈대밭을 가도

갈대는 똑같습니다.

항상 같은 모양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갈대 다른 갈대라는 것을 보면 알기는 합니다.

만져보면

때론 촉촉하기도 때론 말라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린 갈대를 보면, 항상 흔들리기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는 줄기속이 뚫려있어

그 속에도 바람이 오가고

줄기 밖으로 솜털같은 잎들사이고 바람이 오가고

갈대는 바람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흔들리지요.

바람때문에 갈대는 흔들리는데, 난 갈대옆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갈대사이에 있으면, 바람때문에 흔들리는데도,

마치 갈대가 나를 쓰다듬는듯 하여, 마치 수화로 이야기 하는 듯하여

난 그 옆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런데.."

그러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지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갈대밭에서

한참을 있다가 나오면, 무슨 이야기를 그리 많이 했던지,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뭔가 해결된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도

내가 기억하는 것은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런데"뿐입니다.

 

달이라도 밝은 밤이면,

바람도 더 세게 불고(왜냐구요? 바람도 외로울때니까...)

그럼 갈대는 더 흔들리고...

갈대가 흔들리는 것을 보는 내 속에도 구멍이 뚫여 바람이 드나드네요.

달이 밝게 뜨는 밤에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