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밤바다에서
-밤바다에서-
박재삼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진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천하에 많은 할 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밤바다는 운다
검은 바다는 두 줄기 눈물만 남기고
제 얼굴을 숨킨다.
오직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눈물이 길게 흘러내리는 것과
오직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목놓아 울어대는 바다의 소리.
밤이면,
제 얼굴을 숨기고 목놓아, 울고 있는 바다.
세상의 눈물을 받아
그 사연을 받아
딱 눈물만큼의 짠 맛으로 울어대고 있다.
눈물줄기가 내게 왔다가 내게 왔다가
멈추었다가,
눈물을 거두었다가, 밤새 통곡을 한다.
통곡하는 넋들은 바다로 다 모였나보다.
통곡하는 넋들의 울음으로
새벽이면 바다는 목 쉰소리를 한다
더 이상 울지도 못하게 목이 쉰다.
해가 밝아오면, 바다는 울기를 멈춘다
밤새 울고 있던 바다는
아주 맑은 얼굴을 하고 천연덕스럽게 다시 앉아있다. 가끔은 엉덩둥이를 덜썩거리며,
밤부터 새벽까지 바닷가에 앉아 있었던 나는
말간 바다의 얼굴을 보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난 나는
파도와 같이 소리칠 수 있어서...
울고 싶은 날은
밤바다를 가고 싶다.
바다가 보이지 않듯이 ,
나도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방울 바다에 보태고 온다.
그 곳엔 아는 이도 많은데..
시인의 누이와 같이 박자맞춰
바다도 같이.
그날은 바다가 큰 소리로 울었음 좋겠다.
검게 어둔 밤
초생달 하나와 별 몇 개가 전부인 밤이면 너무 다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