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박노해] 노동의 새벽

발비(發飛) 2005. 5. 9. 01:44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이런 시를 참여시라고 했던가..

참여시는 시대가 지나고 세상이 바뀌면,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 어쩌다 박노해의 시를 보게 되었다.

노동의 새벽...

이 시야말로 가장 시류를 탄 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를 읽고 난 바뀌어진 세상때문에 아무런 감동이 없어야 한다. 없기까진 아니더라도 좀 동떨어진 느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노동의 새벽을 읽으면서.

그래 이절실함

아침에 마시는 소주의 맛이 혀끝에 당겨온다.

 

이러다가 못가지 얼마 못 가지....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할 수 없지....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뭐가 다른가...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새벽소줏잔에 붓는다.

독기가 가슴속으로부터 밀려온다...

방금 목계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발우공양...

마음을 가라앉히고 추스리고 그런 생각들로

나를 잠재우려는 아니 착하게 살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순간 난 노동의 새벽을 읽고 분노한다

인생에 대해서

소줏잔을 새벽부터 들이부으며

분노와 울분의 칼을 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날카롭게 갈아서 이제는 내게 다가오는 말도 안되는 인정할 수 없는 거지같은 운명이 오면 날 지키기 위해서 칼을 휘둘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진정 한 순간이라도 소줏잔을 들이키며,

취하고 흔들리며,

그러나 나를 잃어버려 쓰러져 자지 않고

세상에 대고 "ㅆ"의 욕을 해주고 싶다.

박노해,,,

30년이 지난 그의 시가 오늘 내 손에 걸려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나를 잠시 투사로 만든다

나를 치고 지나가는 것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라고 한다.

새벽부터 소줏잔이라도 부어가면

분노와 울분을 키우고 지키며

기다리라 한다. 새벽을....

 

하루에도 몇 번을 난 곤두박질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