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신용선] 화분

발비(發飛) 2005. 5. 9. 01:42

화분

 

신용선

 

죽음을 갖는 것은 모든 것을

갖는 것이

되옵기에

 

죽음의 원형인 흙에는

절대의 평화가

깃들어 있음을 알고 있나이다

 

금가도록 비어있는

낡은 화분에

흙을 퍼담지 마옵소서

 

머지않아 어느 바람에

풀씨가

날아오고

 

그것은 어느새 숨가쁜 목숨이 되어

끝없이

차오르고

 

생각나지도 않는 것들에 섞여

무너지고

마옵니다.

 

아무 그리움도 담아본 적이 없는

빈 가슴으로

살아있게 하옵소서

 

혼자 견디는 사람..

1990년에 발간된 시집에 있는 시이다.

아마 이즈음 이 시인은 많이 아팠다고 한다.

정말 죽을 병...

혼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흙과 죽음과 화분이야기를 한다.

흙으로 가기 위해서, 죽음이라는 문을 열고

화분을 버리고 가는... 금 간 화분을 두고 흙으로 가는.

내 저 문을 나서더라도, 나갈 것이 분명하더라도

나에게 다른 어떤 것도 담지 마시게...

내가 지금 살아있다고

나에게 작은 풀씨라도 깃들면 어떡하겠나...

난 흙으로 갈 것이니. 나에겐 아무것도 담지 말아주게... 깃들지 말아주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으로

비어있는 모습으로 저 문을 나서고 싶네

시인은 누군가에게 홀로 앉아서

아무도 없는 허공에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철저한 외돌톨이 시인이다.

그런데 그 시인이 빈화분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빈화분에 흙을 담고 씨를 심었다며,

화분은 금간 화분은 무게를 이기지 못해 깨졌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빈 화분인채 우리곁에 있다..

천상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