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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쇼룸

발비(發飛) 2018. 8. 1. 09:54

쇼룸


이원


사람과 사람


둘이 나가고 

둘이 들어왔다


빈 곳을 메웠다


둘이 들어오고

하나가 나갔다


짚이는 대로

그림자 둘 집어 들고 갔다


문이 열리고

하나 들어갔다


하나 나오고 

하나 들어갔다


발목들은 문 앞에 나란히

말라 죽은 화분 옆에 나란히


어른과 아이


집 밖에는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은 아이가 가고

거기는 허공이고

아이는 허공에서 앞발이 들렸고

우산이 앞을 다 가렸고


집 안에는 목이 꺾인 어른이 있고

팔짱을 껴서 베고 있고

창은 딱 맞고


개와 사람


개가 달리고 사람이 달린다

개와 사람이 달리고 길이 남는다

개와 사람이 달리고 눈이 펑펑 쏟아진다

개와 사람의 발자국이 녹고

햇빛이 났다 눈이 그친다

개와 사람의 그림자가 섞이고

그림자는 킁킁거리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어제까지 내 동료였던 사람들이 오늘은 자리에 없다. 


안녕, 하고 누구에게는 허그를 했고, 

잘 지내, 하고 누구와는 악수를 했고, 

밥 먹어요, 하고 또 누구에게는 언젠가,하면서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에 세 사람이 퇴사를 했다. 

나는 그들의 퇴사를 지지했다. 

회사와 맞지 않아 세 사람 각각도, 회사도 서로를 힘들어했다. 


한 사람은 오랜 남자의 친구의 일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하고, 

한 사람은 아마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곧 태어날 쌍둥이를 키우는 일을 할 거라고 했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잘 모른다. 


아무렇지 않았다. 

생각이 그들에게 머무르지 않았다. 


마치 시인이 바라본 쇼룸, 쇼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그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게 그들을 보내고, 그 빈자리를 본다. 


빈자리에는,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그들의 자리에는 시인이 말한 그림자가 있다. 

누구에게는 그림자가 옅게 보이고, 누구에게는 짙게 보이겠지

또 누군가에게는 그림자가 아예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그림자는 사실이 아니겠지. 


그림자가 짙지도 옅지도 없지도 않아 아른거린다.

오직 생각이겠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는 타이핑을 하고, 검색을 하고, 보고서에 대해 동료와 이야기한다. 

치열하게. 

그러다 간간이, 

어제 내지 못한 재산세를 이제사 떠올리며, 연체료가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녁에 잠시 통화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안동을 오가며 아버지를 돌보았냐고, 대단하다 했다. 


돌본 건 아닌데, 

그냥 아버지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함께 한 건데,

늙으면 누구나 아플 것이고, 죽을 것인데..., 

그는 아픈 노모를 감당하는 일이 힘겨운가 보다 하고 남 일처럼 

다잡듯 속으로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작년에 우리 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과 떠나보냈던 시간과 떠난 뒤의 시간을 생각했다. 


어떤 시간도 견딜만 했었고, 나쁘지 않았다. 

시간의 마디마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 일이 없었다.

어쩌면, 그 시간들이 지금과 멀찍이 있어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 저녁 그에게 전화가 오면, 

정말 아무 일이 없더라고, 

입 밖을 나온 말들은 대체로 시끄럽기만 하다고, 

그러니 무심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말하지 않겠지. 

그럼 그에게 못된 사람일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그가 말을 하지 않을 수도.


나는 등 뒤에 있는 책꽂이에서 몇 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꺼냈다. 

그 중에서 이원의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를 차분히 본다. 


'쇼룸'을 골랐다. 


하나 나오고 

하나 들어갔다


발목들은 문 앞에 나란히

말라 죽은 화분 옆에 나란히

어른과 아이


.

.

.

개와 사람이 달리고 길이 남는다

 

뜨문뜨문, 긴 시다. 

천천히 시를 따라가다가 

나는 사람의 곁에 있는 '개'인가 생각했다. 

멀찍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쇼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