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누구인가를 만나고 사랑하다보면 우리는 그 삶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인가 모르는 구석이 생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이것은 내가 상대의 세계로 더 깊이 걸어들어왔다는 뜻이다.
단칸방, 투룸, 반지하, 옥탑 혹은 몇 평이라고 말하며 우리들의 마음을 더없이 비좁게 만드는 현실 세계의 공간 셈법과 달리 사랑의 세계에서 공간은 늘 광장처럼 드넓다.
이 광장에서 우리가 만나고 길을 잃고 다시 만나고 헤어진다.
-광장의 한때
-잠시 딴 소리-
전자책으로 일단 읽었다.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에는 그것도 눈이 피로해서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좋았다.
따뜻하고 좋았다.
오랜만에 단어가 드러나는 글을 경험했다.
쉽고도 진지하다.
점심시간에 교보문고에 나가 책을 샀다.
양장인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글의 양이 좀 부족했나. 판형은 작았다.
좋았다.
온라인 서점에서 표지만 보고 상상했던 것과 다른 느낌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계속 전자책으로만 읽다 보니, 표지와 종이, 서체와 서체 크기와는 무관했구나.
그런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느낌이었다.
편집자의 세심한 배려가 책에서 느껴졌다.
글만큼이나 책도 따뜻했다.
수업시간에 이야기해줘야겠다.
책은 마음 하나를 보탠 것이더라고 이야기해줘야겠다.
작가의 마음에 편집자의 마음이 보태 책이 된 것이더라고,
따뜻한 글을 편집자 덕분에 더 따뜻하게 읽었다고 이야기해줘야겠다.
나는 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단칸방, 투룸, 반지하, 옥탑 혹은 몇 평이라고 말하며 우리들의 마음을 더없이 비좁게 만드는 현실 세계의 공간 셈법과 달리 사랑의 세계에서 공간은 늘 광장처럼 드넓다.
작가와 반대로 생각한 적은 있다.
현실의 공간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간은 대부분 참을 수 없었다.
커서 우리가 좀 멀리 있는 것도,
높이 달라서 우리의 키가 차이가 있는 것도,
그 사이에 새가 우는 나무가 있는 것도,
물이 흐르는 강이 있는 것도,
우리의 사랑을 힘들게 했다.
어떤 공간도 힘들었다.
우리는 늘 엉켜있기로 한다.
두 몸을 빈틈없이 붙이고 꼼짝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괜찮았다.
누구부터인지는 모른다.
둘 주 한 사람은 한 걸음을 옮기고 싶어했고,
우리의 몸은 뒤엉켜 한 걸음조차 걸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막혀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떨어지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사이 두 몸의 살들은 붙어버려, 안간힘을 다해 두 몸에서 붙은 살을 뗄 때마다 피가 났다.
오랫동안 그 때 난 상처가 서로를 할퀸 것인 줄 알았다.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이것은 내가 상대의 세계로 더 깊이 걸어들어왔다는 뜻이다.
아니다. 각자의 말에 수긍한다.
이 모든 것은 오직 나 안의 세계 속에 만들어진 현실인 것 뿐이다.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저 멀리 있는 것도 당연하고,
가끔 가까이에 있는 것도 당연하고,
마음이 하루도 쉬지 않고 커지는 것도 당연하고,
커진 마음을 이를 물고 잘라내야 하는 것도 당연하고,
우는 것도 당연하고,
웃는 것도 당연하다.
모든 것이 당연하다.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일에 당연하지 않은 것은 없다.
나의 세계에서 내 멋대로 만들어놓은 일들.
창을 열고, 문을 열고 광장으로 나갔어야 했다.
작가의 말처럼 세상보다 넓은,
수많은 창과 문이 열려있는 광장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만났어야 했다.
너는 너의 문으로,
나는 나의 창을 넘어 광장을 헤매다가 우연히 어깨를 부딪치며 눈인사를 했어야 한다.
그 광장에서 타인들의 어깨를 스치면서 데이트를 했어야 한다.
광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것이다.
괜찮다. 광장이니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