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잠-수면장애- 6호선

발비(發飛) 2017. 10. 19. 18:54





잠-수면장애


6호선이 딱 좋다. 적당하게 포근한 잠을 잘 수 있다. 

6호선의 사람들은 그렇게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소곤소곤 끼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거나 혼자인 사람이 많다. 


6호선에는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책을 읽는 외국인이 옆에 앉았는데, 

중얼중얼거리며 책 읽는 소리, 

그 사람이 읽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영문판이었다. 

웅얼거리면 책 읽는 소리와 전철 움직이는 소리가 함께, 자장가 같았다.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른 시간에 잠이 들었다. 

나는 어렴풋이 잠결에 [노르웨이의 숲] 영화의 한 장면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절벽과 같은 잠이었다. 


공덕역 쯤에서 잠이 든 것 같다. 

고려대 입구에서 잠이 깬다. 

하루끼의 책을 읽던 외국인은 내리고 없었다. 

아마 이태원쯤에서 내렸을 것이다. 아마..


고려대 입구에서 내려 역방향으로, 고려대 입구역은 개찰구 없이 맞은편으로 연결되어 있어 딱 좋다. 

좀 더 자기 위해서 돌아가야 한다. 

잠이 달아나지 않게 되도록이면 아주 천천히 꿈결처럼 움직인다. 

사람들과도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히 걸어야 한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더라도 빠르게 눈길을 피하지 않고, 그윽하게 본다.

오해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다시 잠이 들어야 한다. 


반대 방향도 한산하여 벤치에 기대 눈을 감는다.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가수면 상태를 유지한다.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다. 

신기하게도 6호선 사람들은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적당하게 속삭이는 소리들은, 옆에 사람이 있다는 신호 같아 안심이 된다. 


'고려대 입구'역에서 전철을 타면 거의 자리가 있다. 

돌아가는 전철에서는 갓 연애를 시작한, 아니면 썸을 타기 시작한 것 같은 남녀가 옆의 옆에 앉았다. 

둘은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내게 등을 돌린 자세다.

그것도 편안하다. 등은 따뜻한 벽이다. 

따뜻한 벽은 굳이 그 벽에 기대지 않아도 따뜻한 기운이 전달된다. 

다시 잠에 들었다. 이번에는 꿈도 꾸지 않고 죽음과 같은 잠을 잤다. 

합정역에 내렸을 때 안개처럼 자욱했던 머리 속이 개운해졌다. 


나는 늘 6호선 사람들 사이에서 잠을 자는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에게 6호선의 잠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