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비(發飛) 2016. 12. 3. 02:55

옹달샘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 하다가
목 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오래 간만에 사장님과 부서장이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그 중 한 명이 얼마전 결혼을 한 지라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고,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가 사장님더러 나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책을 세워줘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사장님은 "쟤 가만히 둬. 재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야." 그랬다. 

깊은 산속 옹달샘,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되묻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깊은 산속 옹달샘, 괜찮은 것 같아요. 맘에 들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오후 내내 깊은 산속 옹달샘이 머릿속에 맴맴 돌았다. 


옹달샘이라는 동요의 가사를 찾아보았다. 

엄청 많이 불렀겠지만,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 하다가 목 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깊은 산속의 옹달샘은 

토끼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지 멋대로 딴 짓하고 가는 곳?

노루는 목적을 수행하다 급할 때 이용하는 곳?

아름답지 않게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노루나 토끼의 입장에서 보면, 옹달샘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건 상관이 없다. 

산속 깊은 곳에 옹달샘이 있으니 목을 축이는 것 뿐이다. 

옹달샘이 깊은 산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맑디맑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마 도심 한 가운데 있었으면,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니라 발을 담궜을 수도 있다. 


괜찮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치닫는다 해도, 스치듯이 장난삼아 한 말이지만 나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 좋다.

시끄럽지 않은 깊은 산속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 

토끼던 노루던 누가 와서 무슨 짓을 하던 아무 상관없이 맑디맑게 그곳에 있는 것이 좋고,

언제나 마르지 않고 샘솟는 옹달샘이라는 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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