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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 두 개의 입술

발비(發飛) 2016. 11. 24. 10:20

두 개의 입술


조원


바람이 나무에게 말하고 싶을 때

나무가 바람에게 말하고 싶을 때

서로의 입술을 포갠다

바람은 푸르고 멍든 잎사귀에 혀를 들이밀고

침 발라 새긴 말들을 핥아준다

때로는 울음도 문장이다

바람의 눈물을 받아 적느라

나무는 가지를 뻗어 하늘 맨 첫 장부터

마침표까지 숨죽여 찍는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건

상대의 혀를 움직여주는 것

소통은 바람과 나무가

한결 후련해지는 것!



몸은 대상이 ‘의식’되고 지각되는 통로다. “몸은 응결된 또는 일반화된 실존이며, 실존은 끊임없는 육화이기 때문이다.”(모리스 메를로-퐁티) 마음은 몸을 통해 실현되고, 마음의 문장은 몸을 거쳐 완성된다. 바람은 나무의 “멍든 잎사귀”와 “눈물”을 받아 적기 위해 입술을 내민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 소통한다는 것은 몸을 움직여 상대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후련해지는 것”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시보다 해설의 말에 먼저 꽂힘! 그의 말에 말을 이어본다. 


'몸은 대상이 '의식'되고 지각되는 통로다.'


마음은 주체가 있고, 뜻이 있고, 의지가 있고, 심지어 꿈도 꿀 수 있다. 

마음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이 모든 것을 오직 자신 밖에, 다른 무엇에게도 스스로 드러내지 못한다. 

내가 삶이라고 말할 때, 그 순간 삶에는 반드시 그가 있다. 

그가 없을 때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상대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그냥 존재할 뿐이다. 그냥 있을 뿐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마음으로 그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한다면, 기억하지 못할 누군가가 '사람의 감옥' '사람의 형벌'이라고 말한 '몸' 

오직 내 몸으로만 내 마음을 드러내고, 그의 마음 또한 그의 몸으로만 알 수 있다.  

몸이 없다면, 그와의 단 한시간, 단 하루만에 우리의 관계는 퇴화되고 말 것이다.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몸은 그와 나를 가로지르는 큰 물 위에 놓인 다리이다. 


'"몸은 응결된 또는 일반화된 실존이며, 실존은 끊임없는 육화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모양이 없는 것이라서 뭐든 할 수 있지만, 모양이 없는 것이라 어떤 그릇에도 담을 수 없다. 

그 때의 마음은 내 몸에도 담아놓을 수 없으며, 그의 마음에도 담아 놓을 수 없다. 실존하지 않는다. 

마음을 기억하는 유일한 것은 몸에 새겨진 흔적이다. 

눈에, 코에, 입술에, 혀에, 손에, 발에 어떤 시간의 나의 마음과 그의 마음이 겹겹이 새겨져 흔적으로 남아있다. 

몸이 이 모든 것을 사실로 만들어준다. 

몸이 기억하지 않는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마음의 기억을 믿지 않고, 몸의 기억을 믿는다. 


'마음은 몸을 통해 실현되고, 마음의 문장은 몸을 거쳐 완성된다.' 


이런 까닭으로 몸에 관한 무엇을 좋아한다. 내 몸은 백지장처럼 얇다. 마음이 그대로 비친다. 

뿐만 아니라 바깥 온도에도 마치 변온동물처럼 체온이 변하고, 옆 사람의 상태에 따라 나의 몸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앞이 잘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고, 배가 아프기도 하고, 이상한 힘이 뿔끈 솟아나기도 하고, 

멈출 수 없는 웃음이 나기도 하고, 멈출 수 없는 눈물이 나기도 하다. 

그래서 내게 몸은 마음을 체크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마음을 헤아리기에 미숙한 나는 몸의 반응을 통해 내 마음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내게 스스로 붙힌 별명이 '양은냄비'이다. 끝내 그 실체를 알 수 없었을 마음을 얇디얇은 몸으로, 양은냄비같은 몸이라 그나마 마음을 가끔 돌볼수 있다.


김경주의 [밀어]는 (http://blog.daum.net/binaida01/15950824) 몸의 자각, 마음의 기억을 총동원시킨다. 멋지다.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건

상대의 혀를 움직여주는 것

소통은 바람과 나무가

한결 후련해지는 것!


너와 내가 아니라, 내 안의 너와 나 

마음과 몸은 내 안의 너와 나다.

언제나 함께 하고 싶지만, 많이 닮았지만 달라서 그만큼의 거리가 있는 내 안의 너와 나.

마음은 언제나 몸을 떠나려하는 나 같은 여자, 

몸은 마음을 기다려주는 너 같은 남자,

자웅동체로 살아가는, 

애가 달다가도 아주 가끔 후련해짐을 잊지 못하는,


몸과 마음의 만남.

너와 나와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