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발비(發飛) 2015. 12. 10. 14:04


원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이면


우리들 각자는 한 명 이상이고 여러 명이며 수많은 자아다. 그러므로 주위 환경을 무시하는 자아는 그 환경 때문에 즐거워하거나 고통받는 자아와 같은 자아가 아니다. 우리의 존재라는 거대한 영토 안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텍스트396,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더는 그와 관계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관계라는 단어의 뜻이 애매하다면, 연결되는 것 자체인 緣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그와의 관계에 에너지가 많이 쓰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몸이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지 않고, 그를 향해 점점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온 몸을 기울인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는 것이 불편했고, 불편함은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했다.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이 사랑이라면 죽어도 괜찮다. -텍스트234, 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그를 위해 에너지를 쓰면 안되나?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안 될 것은 없지. 그것도 안하고 뭐? 하고 대답한다. 

자문자답의 결과는 에너지가 쓰임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울어진 몸으로 살아갈거야? 하고 물어보았다. 

더 기울어지지 않도록 버텨. 그건 그의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야. 혹 넘어지면 그가 그곳에 있잖아. 

안 될 것이 뭐가 있냐고 대답한다. 


하루 이틀 사흘....,


나는 내 몸이 마치 팽팽하던 풍선에 바람이 빠진 것처럼 쭈글쭈글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 풍선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어떤 말에도 느리고 무딘 반응을 보낸다.  

나는 점점 느리고 둔감해졌고, 그는 점점 빠르고 예민해졌다. 


그럼에도 관계가 지속되어야 하는가 하고, 또 내게 또 물어보았다. 

어느 찰나에 아니! 라는 순간적인 대답이 훅 튀어나오긴 했지만,  

 정말? 한 번 더 물어보면 나는 또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말을 바꾼다.  


나를 찾은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내가 찾아낸 것은 의심스러우며, 내가 얻었던 것은 이미 내게 없다. 나는 길을 걷듯 잠을 자지만 사실은 깨어 있다. 나는 잠을 자듯 깨어 있고, 나는 내게 속해 있지 않다. 결국 삶이란 근본적으로 거대한 불면이고, 우리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의식이 또렷한 인사불성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텍스트243,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내가 찾아낸 것, 원하는 것이 생기면 나는 인사불성이 된다. 

모든 것을 묵살하고 싶으면서 묵살하지 못하겠다. 

관계에는 그가 언제나 존재한다.

관계는 자문자답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나와 나의 사이에도 존재한다. 


그와 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나와도 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것.

결국, 나는 끝내 내게 도취되어 인사불성인 상태로 그를 향해 이별을 말하고, 

비몽사몽인 상태로 그에게 또 안긴다.  


내 안의 모든 것은 항상 다른 무엇이 되려 한다. 영혼은 칭얼거리는 어린 아이를 못 견디듯 스스로를 못 견디고, 불안은 점점 커지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텍스트 10,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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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우리는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