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라는 말
수 많은 말들 중에 '다시'라는 말을 생각한다.
'숨'이라는 단어가 연달아 떠오른다.
다시 라는 말을 생각하자, 깊은 숨 두 번이 절로 쉬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연달아 두 번의 깊은 숨을 쉬었다.
처음의 '숨'은 한숨에 가까운 무의식에서 나온 듯 하고, 두 번째의 '숨'은 마음과 머리를 통해 나온 의식이 있는 '숨' 인 듯 하다.
일을 다시 시작한다.
몇 몇 프리랜서로서의 일이 아니라 출퇴근을 하는 일은 거의 일년만이다.
다시 라는 말은 어떤 일이 끝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이 미완성이거나 지속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다시 시작하며, 이 일을 다시 시작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야네스의 바다를 생각한다.
카미네 데 산티아고 프랑스길에서 21일만에 발목을 다쳤고,
스스로 선택했던 카미노길을 멈출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에 대해 마음이 많이 상했었다.
나는 상한 마음으로 길을 벗어나 스페인 북쪽 야네스로 갔고, 거의 사흘내내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위에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거대한 파도가 높은 절벽을 치고, 나는 그 위에 서 있었고
내 등 뒤로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의 거대한 산줄기가 벽처럼 두르고 있었다.
야네스는 지극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내게 보여주었고,
나의 절룩거리는 다리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아름답다, 아름답다, 그것에 취해있었다.
밝은 기운으로 다시 시작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곳에는 카미노의 북쪽길이 있었다. 나는 북쪽길을 때로는 걷고, 때로는 조그만 기차를 타기도 하며 카미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행복하게 도착했다.
나의 여행을 다시 시작하게 해 준 야네스.
프랑스길에서 아픔을 참아가며 걸을 때,
이상하게도 좋았던 기억보다는 아팠던 기억들이 하나 하나 올라와 그것들을 곱씹느라 더 아팠는지도 모른다.
야네스에서는 달랐다. 그곳의 아름다움에 빠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가 그곳에 서있음에 행복했고, 그 곳을 찾아간 내가 대견했다. 그리고 삶의 공평함에 감사했다.
나는 그때 결심한 것이 있다.
만약 내가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되고, 그 일이 어떤 모습으로 내게 오든,
오늘 내가 본 이 아름다움에 대한 상쇄인 것이라고. 이 아름다움을 잊지 말자고, 아름다움이 준 의미를 잊지 말자고 말이다.
이제 그 때 그 마음의 수위, 온도가 기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