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황지우] 뼈아픈 후회

발비(發飛) 2014. 10. 21. 20:07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비가 오고 있다. 하필.

좋아하던 침대라며, 10년도 넘게 썼다며, 

소나무로 짠 새 침대의 향에 취해 배웅도 하지 못했다.  

 

밖을 내다보니,

10년을 넘고도 몇 년을 더 쓴 침대는 낯선 모습을 하고는

비를 홀딱 맞고는 재활용쓰레기더미 곁에 누워있다. 

 

그 침대를 사고, 다섯번 넘게 이사를 다녔고,

그 중 어느 집에서는 바퀴벌레라 창궐을 했었다.

내내 찝찝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토피 피부병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지금쯤이면,

매트리스가 온 신경을 누른다. 

 

10년하고도 몇년을 더 쓴 침대는 저 아래 아파트 광장에 가로 누워있고,

나는 경비아저씨께 재활용 수거비용으로 만원을 드렸다. 

나의 폐허, 폐허의 땅, 침대.

침대를 버린다는 건..., 꽃 같은 날을 함께 버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