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왜! 화이트 브레드 없어요? 했을까

발비(發飛) 2014. 10. 20. 23:32

 

암막커튼이 문제였다.

집을 아무리 찾아 보아도 작년에 썼던 커튼 고리가 없었다.

커튼 고리를 사러 다이소로 갔으나, 또 없었다. 다이소에도 없는 것이 있구나.

여기만 없는 거예요? 다른 데서는 본 것 같은데....,

글쎄요. 저희 점포에는 안 들어왔어요.

분명 여기만 없는 걸 거야. 홈플러스까지 걸어갔다.

깁스 풀고 혼자서 걸어나온 것이 처음이다.

비가 조금 내려 우산까지 쓰고,

절룩거리며 아주 천천히 인도를 쭉 따라 걷다가, 횡단보도도 건너고, 계단도 오르고, 에스컬레이터도 타고, 커튼고리를 샀다.

홈플러스를 나와 정말 오랜만에 나온 건데, 점심으로 순대국을 먹고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홀 테이블에는 혼자 온 손님이 한 테이블씩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내가 앉자마자 내 앞 테이블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부부가 와서 홀이 좀 자연스러워졌다.

부부는 근처에 아파트를 구하러 온 모양이다. 4억 5천짜리 전세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대개 부부가 집을 구하면 의견 충돌이 있을 법한데, 고요히 이 집 저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모차를 탄 아이는 자는 모양인지 조용했다.

곧이어 옆 테이블에 휠체어를 탄 좀 나이든 아저씨가 앉았다.

숟가락도 젓자락도 반찬그릇도 우당탕거렸다. 그 소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거슬렸다.

순대국에 고기를 많이 넣어달라며 주방을 향해 소리친다. 왜 많이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글부글 끓는 순대국이 나왔다. 뚝배기에 고기가 엄청 많이 들어있었다.

그런데...먹기 싫었다. 피해망상증인가,

순대국에 든 고기도, 순대도 너무 흐드러졌다.

밥에 양파를 쌈장에 찍어서 몇 입 먹어보았다. 도저히 계속 먹을 수 없었다.

절룩거리며 식당을 나오는데, 검은 색 비닐봉지를 안은 휠체어를 탄 여자가 옆으로 휙 지나간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전철역에 가려면 지나가야 하는 아파트 앞을 지날 때면,

이른 아침이어도, 밤 늦었어도 언제나 휠체어 부대가 앉아있다. 

그래서, 출퇴근길 그 앞을 반듯이 걸어 지나갈 때면, 걷는 나와 앉아서 나를 보는 그들 사이에 묘한 기류를 느져졌다.

싫다.

왜? 싫으면 안되는가? 하면서 싫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언제나 그 사람들 앞을 지날 때면 내가 나쁜 사람 같았다.

그 사람들 앞을 지나는 것이, 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이 싫으니까... 나는 나쁜 사람 같았다.  

한 모금 먹은 순대국이 너무 부대낀다.

입안에 남은 고기냄새가, 고기가 가득 든 순대국이 떠오른다.  

비는 오다가다 해, 우산을 쓸 정도가 아니었지만 우산을 받쳤다.

파리바케트로 들어갔다. 화이트 브레드가 없다.

건강식빵, 크로와상, 고로케, 샌드위치.... 만 있었다. 말고, 하얀 것이 먹고 싶었다.

화이트 브레드의 빈 자리에는 뜯어먹어도 맛있다, 라는 메모스틱만 있었다.

화이트 브레드 없어요?

종업원이 잠시만 기다리라면, 안에 있는지 알아본단다.

있었으면 좋겠다. 화이트 브레드를 많이 먹어버릴 생각을 하는 좀 나아졌다.

아직 김이 오르고 있는 화이트 브레드를 비닐에 넣어주며 김이 나가게 봉지를 닫지 말라고 한다.

집으로 오는 내내 봉지를 코에 박고 냄새를 맡았다.

 

한 시간 남짓한 외출에서 돌아와 암막커튼에 고리를 달아 겨울 준비를 했다.  

낮인데도 방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