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남
대개 첫만남에서 사랑에 빠진다.
아직도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오래 묵어 숙성된, 안정화된 무엇이라기 보다 낯설어 긴장되는 그 부류의 감정에 가깝다.
이게 사랑이라 떨리는 것인지, 낯설은 사람을 대하느라 떨리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 구분의 지점이 나로서는 모호하고 애매하다.
그가 말했다.
무엇을 원하다고 해도 그것이 그도 원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뭐든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나는 그의 말을 의심한다.
그럴 수 있을까? 속으로 생각하다가 묻는다. 그게 사실인가요?
내게 그의 대답이 무엇이든, 내가 생각한 대답을 이미 가슴속에 묻는다.
사실이다.
어젯밤 늦은 귀가에 아파트 주차장이 가득, 주차할 곳이 없었다.
빙빙 몇 바퀴를 돌다가 아파트 옆 도로에 주차를 시켰다. 안전하겠지... 하면서,
오늘 아침 도로가 나가는 순간, 렉카에 매달려 끌려가는 내차가 보였다.
드라마의 웃기는 장면처럼, 나도 똑같이 손을 흔들며 아....하고 한참을 따라갔다.
견인보관소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하고 차를 찾아갔다.
차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차를 찾은 시간이 10분 정도였다.
47000원의 견인요금을 내고, 범칙금이 또 나올거란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오늘 아침 도로같다고 생각했다.
어느날은 아무일이 없이 아주 편하디 편한 주차공간이었다가,
또 어느 날 갑자기 주차금지구역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렉카차의 등장처럼 모든 것이 정당하지만 변하는 것이다.
그는 그날 오후 다섯시에 향내 진한 오렌지 하나를 내밀었다.
그 시간의 오렌지는 어떤 향 좋은 술보다도 진한 향을 낸다.
큼지막한 오렌지 한 조각은 바로크시대의 여인보다 풍만하고 육감적이다.
한 입 가득 과즙이 흐르는 오렌지를 쭉쭉 빨아먹으면서 그의 시선을 피한다. 이거 다시는 안 먹을래.
그는 피식 웃었지만, 그의 앞에서 오렌지를 먹는 일은 없었다. 그를 만나는 일도 없었다.
어긋남.
불법주차.
오늘 아침 견인보관소에서 차를 찾아나와 회사로 지각하지 않기 위해 급하게 차를 모는데,
당연히 내가 다니던 길이 아닌 낯선 길에, 현기증을 느꼈다.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마침 네비게이션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내게 화곡동 어느 지점이라고 삑삑거린다.
이미 익숙한 길에 진입하였음에도 잘 못 잡고 있는 네비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상황이 그와 딱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를 생각했다.
여행자들은 대개 깊은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깊은 꿈을 꾸고 있는 서로의 깊은 눈에 반한다.
그 깊은 눈으로 끊임없이 공통점을 찾는다.
여행지니까, 무엇을 원하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가 원하는 것이다.
뻔하게 갈 곳이 다른 그들의 여정 속에, 곧 혼자가 될 것은 뻔한 여행자의 만남은 낯섬을 극복하기도 전에 불안이 포함된다.
내일까지는 함께 다닐 수 있겠네.
영원이라는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