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이렇게 말하고 싶다.
.
.
영영 잊는 건 영영이더군....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선택한 것을 책임지기 위해 움직인다.
선택의 조건들이 견고할수록 그 움직임 오래고 지루하기 쉽상이지만 이것 또한 견고하다.
그렇게 우리는 해낸다.
그리고 그것은, 말도 안되게 영원하지 않다.
더 가관인 것은 또 그만한... 다른 선택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고,
내 지난 선택은 화석처럼 단단해져,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는 무엇이 되어있다.
이렇게.. 꽃이 지듯, 내 선택은, 행동은, 결과는 꽃처럼 진다.
어쩌면...
시인의 말처럼 지는 것이 잠깐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고있는 모습을 돌아본 순간이 잠깐일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오래도록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하고 움직인다.
움직임이 다할 즈음 일은 그 실체를 드러낸다.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꽃처럼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삶 또한 그렇다.
내게 삶이 이렇다 하고 느끼는 순간, 삶 또한 지기 시작한다.
돌아본 삶은 쪼그라들어 그때 그색이 아니다. 그저 빛을 조금은 머금어 겨우 남아있는 色, 나는 이 사실에 충격에 빠진다. 그 사실에...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 시인의 말....
영영 한참이더군.
그래, 어떻게 그 색을, 그 모습을 어찌 잊겠는가?
영영 한참이더군.
무엇이 지고 무엇이 피는...거지?
내가 소중히 할 것은 피고 지는 꽃이 아닐지도 몰라.
내게 소중한 모든 것은 피고 지는 것이 아닐지도 몰라.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이 아닐지도 몰라.
마음 속에 담은 영영 잊지 못할 그냥 그것! 그저 그것일지도 몰라.
꽃이고, 님이고, 그대고......그저 그것일지도 몰라.
그래...
그냥 그것일 것이다.
이미 피고, 질 때와는 상관없이 마음 속의 무엇은 그것이었던 것이다.
선운사 동백
.
선운사 동백은 영영 잊지 못하는 우리 마음 속의 그것이,
몸을 뚫고 나와 벌겋게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빨간 동백을 볼 때마다 마치 속살이 드러난 상처를 보는 것처럼 아리었던 것일까?
난, 이제 동백을 볼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내가 영영 잊지 못한, 마음 속에 그것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천에 깔린 마음, 속의, 꽃, 님,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