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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에 관한 기억

발비(發飛) 2013. 11. 11. 17:42

 

월요일, 한 명이 결석을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시옷이라고 하자. 중학교 2학년이었다.

선생님은 아침 조회시간에 시옷이 손가락이 잘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못 온다고.

소먹이를 줄 볏짚을 작두로 자르다가 생긴 일이라고 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검지가 동그랗게 제 혼자서 통통 튄다.

짧다. 혀끝으로 맛 보았던 검지의  간지러운 맛.

손에서 검지손가락이 사라지자 뇌 한쪽이 하얗게 죽어버린 아버지처럼 손은 기억을 잃는다.

아버지의 뇌는 균형이 깨졌고, 그 좁고 쪼글한 사이에 끼어있던 현운들은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여, 

환상으로만 남은 아버지의 기억처럼, 검지의 환상으로 손이 꿈틀거린다.

아버지는 바닥에 떨어진 검지손가락처럼 통통 뛰다가, 한참을 뛰다가 비명을 지르며 현기증으로 벌벌떨리는 손가락으로 동그란 손가락을 끌어올린다.

검지의 기억이 환상이 되지 않도록 고추장을 찍어 맛보던, 코나 귀를 파던, 실로폰 공과 나란하던, 쭉펴서 가위질을 하던,

촛불 켰던 밤 천정에 글씨를 쓰던, 생각을 한다.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는다.

기억들은 뚝뚝 눈물로 단을 쌓고 층을 쌓아 아버지를 돕니다.

아버지, 검지를 검지 자리에 붙인다. 세상 무엇보다도 찬 검지가 피 묻은 짧은 손끝에 닿는다.

말이 아닌, 그저 소리가 가득한 마당 한켠, 나는 차고 무거운 현운(玄雲)에 싸여 더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검지는 분노에 차서 곧게 펴져 있고, 다른 손가락은 드리운 그림자때문에 밤의 어둠처럼 숨 죽인다.

현기증은 우리가 가진 그림자, 어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일생을 갚고 차려야 할 예의이다.  -春芳

 

시옷이라고 이름 붙인 그 아이는 커다란 붕대를 칭칭 감은 손으로 사흘이 지난 목요일에 학교에 나왔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붕대를 푼 그 아이의 검지손가락 끝은 삐뚤고, 곧게 펴져있었다.

기억은 이성의 바깥의 것이다. 라는 말을 해 놓고,

이성 바깥의 기억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무슨 기억이 나나 잠시 나를 풀어놓았다.

시옷이의 손,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의 손가락이 머리 속을 메운다.

 

꽃의 현기증

 

김경주

 

이 꽃말을 잊어버릴 때

꽃에서 벗어난 꽃말은 수증기가 되리라.

 

(......생략)

 

꽃말을 하나씩 망각하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의 노트의 왼쪽에는 자신에게 온 꽃의 나이와 이름을 기록했고 노트의 오른쪽에는 자신에게 와서 묻힌 꽃의 묘지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가락과 황혼이 가장 닮은 시간에 구부러질 때 노트의 가운데에 꽃의 비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오늘 자신의 시에게 보낸 꽃의 조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오늘 자신의 시에게 보낸 꽃의 조문은 이러했다 '이 시를 보는 자는 현기증이 하나의 육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시를 만진 자는 그 육체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