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된 이'여! 고맙습니다!
제주는 잘 다녀왔다.
그리고 제주도 푸른밤에 2005년 여름 나는 모즈리를 신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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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binaida01/2928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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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게 된 이'가 나의 블로그 글을 보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언젠가 나의 유일한 말상대였던, 블로그.
지금은 말상대가 생겨 냅 둬 버린 여기.
현재의 내가 아니라고 문자를 보내봤지만, 내 말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암튼, 나는 '알게 된 이' 덕분에 제주 멋진 게스트하우스에서 핸펀으로 블로그 글들을 거슬러 읽었다.
2005년 여름
나는 모즈리를 신고 전철을 타고 갔던 모양이다.
전철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발을 찍었던 모양이다.
발에 대한 나의 집착은 대단하다.
셀카, 는 그때도 지금도 사절이다. 그러므로 내가 움직인 사실을 유일하게 증명할 발.
'알게 된 이'의 문자 덕에 모즈리를 찾았다.
모즈리를 아끼고 좋아했더랬다.
그래서 써놓은 글도 있다. 찾아서 짝지어본다.
<모즈리 신고 가는 길>
모즈리를 신고 걷는 길
동대문 벼룩시장에서 가죽 모즈리를 보았다.
맨발 대신 맨발처럼 신는다는 모즈리.
맨발 값으로 만원을 내고, 맨발 대신인 모즈리를 신었다
얇은 것은 모즈리 바닥인데, 걷는 순간 땅껍질이 얇게 느껴진다.
커다란 박 덩어리의 얇은 껍질 위를 걷는 듯 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퉁퉁거리는 울림
모즈리를 신고 걷는 지구는 얇은 껍질을 두르고 있었다.
난 둥근 껍질 위를 뒤뚱거리며 미끄러지듯 걸어 다니고 있다.
발바닥이 얇은 모즈리를 신고 얇은 지구의 껍질 위를 걷는데, 통통거리는 껍질의 안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맨발 대신 신는 모즈리 발로 지구를 통통 두드려보았다.
세상 나무들의 뿌리들이 이리저리 엉켜 자리 잡는 소리,
마그마 불길을 막아내는 소리로 껍질 안에서 통통거리며 대답을 한다.
그 소리들이 얇은 모즈리를 신은 발바닥을 간지럽게 하는데,
그 소리들 중에는 자석처럼 당기는 소리도 있었다.
땅 밑 조상들이 내 발 밑에서 잰 걸음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소리가 통통거리며 울리기도 한다.
통통하고 다시 모즈리를 신은 발을 구른다.
지구 껍질의 안과 밖이 통통거리고,
내 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모즈리 신은 맨발이 땅을 파고 든다.
BY CHUNBANG
2005년 인도 자이살메르, 맨발! 그들처럼 맨발이었었다.
날마다 더 거칠어졌다.
발껍질은 벗겨지고, 발톱밑은 까맣게 때가 끼었다.
얼굴도 발과 같은 형편이었다.
그때 나는 위험했다. 남들도 위험하다고들 그랬다.
낙타의 발에는 뼈가 없다
자이살메르에 가기 위해서는 모래사막을 건너야 한다
도시로 가는 길목에서 사막은 뼈가 있는 것들을 걸러내고 있다
낙타의 물렁한 발이 필요하다
뼈있는 발로 모래사막을 건너면 사막은 발을 삼켜버린다
모래는 뼈가 있는 것들을 삼킨다
낙타의 물렁한 발을 빌어 사막을 건넌다
모래사막이 발을 삼키려하면
뼈 없는 낙타의 물렁한 발은 모래 위에 납작하니 눕는다
때로 세상이 나에게 모래사막으로 올 때,
나도 납작하게 누워 견딜 수 있는 물렁한 발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게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 혹은, 나의 뼈에 나의 발이 찔리지 않기 위해
날카로운 뼈들을 삭혀 낙타의 물렁한 발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는 홀로 사막을 건너 황금도시로 가야한다, 건너야 한다
BY CHUNBANG
2013년 제주에서 발바닥이 두꺼운 핏플랍 샌들을 신고 걸었다.
구멍 숭숭 뚫린 검은 돌도, 하얀 모래도, 긴 줄로 밀려온 해초 더미도 맨발에 닿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안전하다.
나의 발은 안전하다.
나의 발이 전보다 안전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어도, 진흙길을 걸어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2005년 블로그에 올려진 모즈리 신은 내 발을 보고 알게되었다.
며칠 전에도 난 이렇게 말했다. "발바닥이 아파!" "난 발바닥이 아파서, 플랫슈즈도 못 신어!"
<모즈리 신고 가는 길>의 나는 지구껍질을 통통거리며 밟고, 지구 속의 조상을 만나고 살았더란다.
자이살메르 사막도, 안나푸르나 계곡도 맨발로 잘 걸었더란다.
발바닥이 아파도 그러고 걷고 또 걸었더란다.
'알게 된 이'여!
당신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글을 보며 나를 다시 봅니다. 내 삶이 진정한지 내게 다시 편지를 씁니다. 그래야 나를 볼 수 있을까 ㅋㅋㅋ"
"난 어쩌다 이렇게 됐나"
나는 당신 덕에 오늘 내 이야기를 주절거립니다.
"난 어쩌다 이렇게 됐나?"
고맙습니다. '알게 된 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