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15년

발비(發飛) 2013. 1. 28. 19:28

 

형제 없이 지낸지가 15년쯤..                        

;그게 뭐?

뭐든 의논없이 혼자 살았던 시간이 15년쯤...         

;그래서 뭐?

처음부터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지..당연 처음엔 혼자가 아니지.. 애기였으니...

처음에는 두살 된 오빠의 동생으로 태어났을 것이고, 그 다음 일 년 뒤에 남동생이 태어나 나는 가운데 딸이 되어 자랐다.    

;그땐 양념딸이라 했다.

꽤 오래도록 남자들 사이에 낀 여자로, 남매로 살았다.    

;조금 외톨이지만, 나름 아래 위 번갈아가며, 두 형제가 사이가 별로였다.

그리고 두 살 위에 오빠는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그때 우리는 같은 전쟁을 치른 전우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동생이 미국으로 갔다.                   

;꿈이 있다고 했나?

그 사이 또 많은 사람을 떠났다.                        

;이건 오직 나만의 문제다.

그래서 부모님만 남은 꼴이 되었다.                      

;왜 자식이 어른이 되면 부모는 늙는 걸까?

 

...

그렇게 15년을 살았구나.

;어

부모님은 의논상대는 아니지. 명령 혹은 요청... 뭔가 급이 다르니... 같은 처지의 사람없이 라고 표현하자.

;나는 느려졌다.

같은 입장에 놓인 사람 하나 없이 그냥 혼자가 되었다.

;나는 점점 느리게 반응했다.

 

가끔 친구가, 혹은 동료가 형제나 남매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난 그 대화가 엄청 어색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사는 별

그 낯섬이 스스로도 놀랠지경이었다.

;마치 내가 어느 별에서 온 사람처럼

그럴 땐 조금 우울해졌다.,

;어느 때부터 익숙해졌다.

내게 부재는 운명인가... 했다.

;그래서 익숙해졌다.

 

이제 본론이다.

;동생이 온다.

금방 오는 것은 아니고, 서서히 오기 시작해 가을이면 다 온다.

;한 달전에도 다녀갔고, 일주일전에도 다녀갔다. 한 달 뒤에도 온다.

낯선 모습, 낯익은 모습이 혼재했다.

;어느 지점에서는 너무 어색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너무 익숙하다.

동생도 그럴까?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께 동생은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완전히 뻗었다. 그리고 나의 쉬는 날인 토요일에 조그마한 나의 집에서 암막커튼을 친 채로 종일 잤다.

: 낮인데도 캄캄한 집, 침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어둠 속에서 볼륨을 낮추고 티비를 봤다.

이것 또한 낯설고도 익숙한 모습이다.

;우리가 진짜 익숙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까? 일어나! 하고 소리를 질렀을까?아니면 저 방에 가서 자! 하고 소리를 질렀을까?

나는 무엇이 원래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어떨지, 생각만 했다.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좀 우울해진다. 그래서 난 좀 우울해졌다. 그렇다고 우울한 것도 아니었다.

잠시 깨어 함께 밥을 먹을 때, 덜렁 차린 밥상이 어색하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고, 둘 다 대충 먹자고 기분좋게 결론을 내렸다. 

;이건 영락없는 어느 시절 남매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돈을 버는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이구나.

;둘 다 그렇네.

동생이니 내가 밥값을 다 내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동생이라도 누나 밥을 사주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우리는 돈을 벌어서 서로를 위해 어떻게 돈을 써야하는지도 모르는구나.

자연스러운 단계를 거치지 못한 어설픈 남매다.

;이건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다.

 

2년전에 동생이 술을 먹고 전화가 왔었다. 그 곳에서는 밤늦은 시간, 나는 출근해서 일할 시간인데... 술에 취해 내게 말했다.

"나는 누나가 없어? 왜 누나는 한 번도 전화를 안해?"

"하기 싫어서... 할 말이 없어서..." 하고 대답했었다.

 

지금 동생은 미국으로 가서 와이프와 아이들과 일상을 살고 있을 시간이다. 

나는 그동안 잠시 한국을 다녀갈 때도, 전화를 할 때도 곁을 주지 않았던 동생에게 분명 곁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공항으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마음이 이상하다.

과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분명 혼자서 꼿꼿히 서려했던 시간들의 부작용임에 분명하다.

;자연스러운 것이 하나 없구나.

 

이제 또 하나의 막이 시작되었다.

물론 장가가서 가장이 된 동생과 나와의 관계가 뭐 대수로울 것이야 없겠지만,

대한민국 땅에 같은 부모아래  난 형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섬으로 갈 수 있게 된거다.

그런 마음이다.

이쯤 나이에 형제는 서로를 어떻게 봐야할까? 뭘까?

;새로운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