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성
<2011.7.남>
어쩌다보면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재미나게도 오래전 어느 시점에는 미래에 만나야 할 남성상에 대해서 상상하고 그것이 이상형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언젠가부터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이런 사람하고 이야기를 한다.
상상속의 이상형을 그리기보다. 만났던 사람들 중에 찾는 것이 더 구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는 괜히(?) 늦게 tv를 틀었다가,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이라는 뉴스에 잡히게 되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어제처럼 또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타일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다보니,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나무를 그리게 되었다. 실은 더 많은 나무를 그리고 싶었다.
작은 나무, 큰 나무.
작은 나무가 큰 나무의 가지가 되기도 하고, 뿌리가 되기도 하고,
큰 나무는 작은 나무의 집이 되기도 하고, 하늘이 되기도 하고, 땅이 되기도 하는..나무를 더 그리고 싶었다.
나는 얼굴에 식물을 그리기를 좋아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한강의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부터 내 안에 있는 식물성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식물적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식물적 인간이 뭐냐고 묻는다면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빠르겠지만,
꼼짝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동되는 그것, 순환의 기초이기도 한 그것,
그렇지만 내게 식물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은 식물이 갖는 자립형 폭력성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방해한다면 소리없이 그것을 조인다.
뿌리로 감고, 가지를 늘어뜨린다.
또 햇빛을 받기 위해서라면 누군가 그 아래에서 하얗게 질려가더라도
잎을 키워 필요한 만큼의 햇빛을 취할 때까지는 이기적으로 움직인다.
나는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상형 남자의 얼굴을 그린 이 그림과 어쩌면 상관있기도 하고, 상관이 없기도 하다.
그게 무엇인가,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내는 것, 그게 나의 이상형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아주 평범한 모든 이의 이상형이겠다.
타협하지 못하는 식물의 강함. 그것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만한 괴력이다.
아주 가끔 나는 빡빡한 쌈채소를 먹을 때, 육즙이 듬뿍 있는 배를 먹을 때면,
땅에서 끌어올렸을, 그 섬세하고도 강한 괴력을 느낀다.
그래서 삼겹살을 먹을 때보다 몇 배나 강한 에너지가 내게 옴을...
이 얼굴을 보면서 뻑 갈만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다시 보니, 곳곳에 기대어 앉을 곳도 많다. 멋진 남성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