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테 콜비츠의 얼굴
1867년 7월 8일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에서 출생하였다. 당시는 동프로이센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러시아령이며 지명도 칼리닌그라드 (Kaliningrad)로 변경되었다. 고향에서 미술공부를 하였다가 베를린과 뮌헨으로 이주하여 그림공부를 했다. 1891년 의사인 K.콜비츠와 결혼하여 베를린에서만 줄 곧 살았다. 처음에는 유화를 그리다가 뒤에 에칭·석판화·목판화 등의 제작을 시작하였다. 표현주의적 화풍으로 M.클링거와 E.뭉크 등의 영향을 받았다.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직조공들 The Weavers 1892>이라는 연극을 보고 당시 독일의 비참한 노동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참상을 표현한 《직공들의 반란》(1895∼1898)이라는 시리즈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베를린에서 대규모 전시회로 기획되었다. 이후 두번째 시리즈 작품인《농민전쟁》(1902∼1908)을 제작하였다. 자신의 막내아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2개월만에 전사하자 비통한 심정으로 세번째 시리즈 작품인《전쟁》(1922∼1923)을 제작하였다. 이후《프롤레타리아트》(1925), 《죽음》(1934∼1935) 등을 발표하였으며 억압속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을 표현하였다. 그녀의 테마의 연작 시리즈는 독일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며 케테 콜비츠는 부당한 권력에 투쟁하는 예술가로 표상된다. 1919년 프로이센 예술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하자 그녀의 모든 것이 박탈당하였고 1936년이 되자 작품 전시도 금지되었다. 2차대전 중 그녀의 집은 폭격을 받아 많은 작품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1945년 4월 22일 연합군에 의해 독일이 해방되기 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