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캐테 콜비츠의 얼굴

발비(發飛) 2010. 8. 10. 09:11

 

케테 콜비츠 (1867-1945)
 
 
"사람이란 불행을 겪기 전에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순전히 자기 의지에 의해서만 변신하는 사람은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변화란 더디게 일어나는 것인가 보다."
 
독일의 화가이자 조각가, 판화가이다.
이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멈췄다.
삶이 어땠을지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다.
나는 얼굴에 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한다.
내 얼굴이 내 삶과는 상관없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아줌마의 얼굴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
물론 그 분들에 대한 비하의 생각은 없다.
그 분들도 그럴 것이므로... 나도 그렇다.
캐테 콜비츠라는 화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분명 삶이 간단치 않았을 것 같은 얼굴인데, 생선아줌마의 얼굴이 아니다.
무엇이 이 얼굴에 다름을 주었나.
어떻게 박경리선생님의 얼굴이 보이는가.
 
"사람이란 불행을 겪기 전에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순전히 자기 의지에 의해서만 변신하는 사람은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변화란 더디게 일어나는 것인가 보다."
 
그래, 그런 것이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정신없이 일에 대한 검증의 절차를 밟고도 있다.
처음 일을 맡긴 사람에게는 호시탐탐 그 사람의 능력을 체크해보려고 한다.
나도 호시탐탐, 나의 능력을 드러내 보일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다 얼굴을 보았다. 깊이가 다르다.
나는 좀 다를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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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7월 8일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에서 출생하였다. 당시는 동프로이센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러시아령이며 지명도 칼리닌그라드 (Kaliningrad)로 변경되었다. 고향에서 미술공부를 하였다가 베를린과 뮌헨으로 이주하여 그림공부를 했다. 1891년 의사인 K.콜비츠와 결혼하여 베를린에서만 줄 곧 살았다. 처음에는 유화를 그리다가 뒤에 에칭·석판화·목판화 등의 제작을 시작하였다. 표현주의적 화풍으로 M.클링거와 E.뭉크 등의 영향을 받았다.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직조공들 The Weavers 1892>이라는 연극을 보고 당시 독일의 비참한 노동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참상을 표현한 《직공들의 반란》(1895∼1898)이라는 시리즈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베를린에서 대규모 전시회로 기획되었다. 이후 두번째 시리즈 작품인《농민전쟁》(1902∼1908)을 제작하였다. 자신의 막내아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2개월만에 전사하자 비통한 심정으로 세번째 시리즈 작품인《전쟁》(1922∼1923)을 제작하였다. 이후《프롤레타리아트》(1925), 《죽음》(1934∼1935) 등을 발표하였으며 억압속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을 표현하였다.  그녀의 테마의 연작 시리즈는 독일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며 케테 콜비츠는 부당한 권력에 투쟁하는 예술가로 표상된다. 1919년 프로이센 예술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하자 그녀의 모든 것이 박탈당하였고 1936년이 되자 작품 전시도 금지되었다. 2차대전 중 그녀의 집은 폭격을 받아 많은 작품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1945년 4월 22일 연합군에 의해 독일이 해방되기 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