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대로 映畵

[일본] 요시토모 나라와 함께 한 여행

발비(發飛) 2009. 3. 8. 01:02

어떻게 그를 만났을까?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가 언제인지 아무리 애를 써봐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지난 주말에 나의 영화 화일 중에 다운을 받아 둔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직업상 캐릭터와 일러스트 이미지 작업에 대한 공부차원에서 찾은 자료중의 하나였던 듯 싶다)

 

이게 뭔데 여기있지?

하고 파일을 열었을때, 한남자가 서울거리를 걷고 있었다.

일본어가 바닥에 깔리는데 배경은 광화문.

그렇게 이름도 성도 뭣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다큐영화 한 편을 따라 들어갔다.

 

 

 

 

감독 사카베 코지/ 주연? 나라 요시토모/ 다큐/ 93분/ 2008/ 일본

 

전시회가 열렸고,

사람들은 누군가의 전시회를 흥미에 마지 않는 눈빛으로 열중했다.

관람객의 대부분은 아이들이거나 젊은 여성들.

전시된 그림들을 나도 같이 본다.

눈에 익다.

캐릭터의 느낌으로 많이 접한 그 이상한 아이다. 엽기여자아이....

아.. 이걸 그린 사람의 이야기구나.

 

화가가 아니고 일러스트구나.

대개 말하는 팝아티스트?

 

그리고 일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초반 몇 분은 그냥 그렇게 팔을 궤고 보다가 안되겠다 싶어 펜으로 다큐를 보면서 메모를 했다.

 

-메모-

 

1.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2.고독이 나를 창작으로 이끌었다.

3.상자에서 나오는 소녀,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물밖으로 나오는 소녀

4.그를 따라 가다보면 길가의 것들이 선명히 살아움직이기 시작한다.

5.틈새를 보도록 허락한 주인이 뚫어놓은 창_틈안으로 보이는 것들은 주인의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6.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같은 것은 없다.

7.어렸을때는 아무 생각도 못했어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야 어렸을 때의 나를 생각하니까 이것저것이 떠올랐어요.

8.20세기의 배를 좋아해

9.역으로 느끼는 압박감, 완전히 비우고싶어, 내안의 문제, 조금 더 찾고 ... 초심

10.그림을 그릴 때는 언제나 혼자서, 벽에다 종이를 붙이고, 벽에서 다섯걸음 물러나 허공에다 그림을 그리고,

다섯걸음 앞으로 걸어가 한 획, 허공에다 그린 그림을 옮긴다.

11.소리를 들키고 싶지 않는 사람은 음악의 볼륨을 올린다.

12.가장 러프한 스케치를 작은 집에다, 학생때의 방 모습과 같고, 넓이도 같고, 방안에 붙여진 글귀같은 것도 같고, 돌아가고 싶구나

13.중요한 것은 혼자, 회색하늘에 춥고, 그립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어렸을 때처럼...

14.이사를 하는데, 처음 이사를 왔을 때의 느낌과 가까워진다

15.냉소적인 사람

16.찰라의 느낌보다는 조금 더 깊은

 

(대사를 그대로 적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그를 보며 내 생각대로 주절거린 것)

 

-메모 끝!-

 

내가 본 누가 그린 지도 모르면서 보았던 비슷하게 닮은 여자아이들은 복제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그 여자아이들을 그려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여러 가지 색깔의 파스텔로 캔버스 전체에 칠을 한 다음에

몇 번의 작업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복제인간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아이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마치 인간이 참 여러가지 상황에서 태어나고 상황에서 자라고, 상황에 따라 자리매김을 하는 것과 같았다.

참 많은 상황을 겪은 여자아이는 어쩌면 그런 얼굴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어릴 적 혼자서 시간을 많이 보낸 아이라면,,,

생각의 겹은 자연스럽게 두꺼워질 수 밖에 없는 것.

 

그런데 나라 요시토모는 스스로 변해간다고 했다.

A TO Z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함께 하는 작업을 하다보니, 스스로 밝아지는 것 같고

그것은 여자아이들의 표정도 바뀌게 되었다고...

참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하려고 작정을 하여도 결국은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진정성일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내가 이미 사회적인간이 되었으나,

스스로 과거의 고독이나 고립을, 혹은 그 때의 작업을 다시 하고 싶더라도

이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현재의 진정성때문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문득하면서

그는 어쩌면 두 개의 자신, 사이에 그 간극때문에 잠 못 드는 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다큐를 다 본 뒤, 한참을 멍하게...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만난 그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이건 유성용이라는 여행작가를 책으로 만났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것이다.

(둘이 닮았다! 뭐가 닮았지?_이 타임에 잠시 딴 소리!)

 

-잠시 딴 소리-

 

1. 부드러운 외모에 미소는 더 부드럽다.

2. 부드러움과 상반된 회색빛 정서

3. 잘 어울리는 듯 한데 물에 뜬 기름? 결국은 분리되고 마는...

4. 혼자가 잘 어울린다

5. 타인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해 보인다

6. 쉬지 않는다

7. 외부에서 보기에는 언제나 쉬고 있는 듯 하다

8. 소리없이 서서히 스며든다.

...

난 왜 이런 캐릭터에 열광하는거지?

...

-잠시 딴 소리 끝-

 

 

 

그래서 그가 쓴 [작은 별 통신]을 샀다.

그 자서전?(일기 비슷하다)에는 그가 살던 집들이 단면도로 그려져있어서

상상 속에서 그가 살았던 그 공간에서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과 작업들이 가늠할 수 있었고,

참 많이도 다닌 그의 여행지를 따라다니며,

그가 무엇에 눈길을 주면서 낯선 여행지를 다녔을지도 가늠할 수 있었고,

그가 자신의 소리를 죽이기 위해 볼륨을 높인 것이 아니라, 예술가적 기질 때문에 상통하는 쟝르인 음악을 사랑해서

볼륨을 크게 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는 가늠도 할 수 있었고,

다큐에서 그 스스로 어둠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가 쓴 글에서는 참 귀여운 면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점은 유성용작가와는 반대, 유성용작가는 영상에서 밝고, 글에서는 한없이 어두운데...

나라 요시토모는 영상에서는 회색, 글에서는 하늘색에 가까웠다)

 

[작은별 통신]을 다 읽고, [나라 요시토모와 함께 한 여행]을 다시 봤다.

좀 더 익숙한 모습으로 다시 만난 그는 예술가였다.

그의 프로필에 보면 일러스터라고 나와있다.

정확히 일러스터와 화가가 어떻게 구분이 되는 지도 모르지만,

팝아티스트라고 해야하겠지.

그것 또한 구분이 모호하긴 마찬가지.

무엇이 되었건, 그는 자신의 일보다는 삶으로서 그림을 그리고, 캐릭터로서 여자아이를 그리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그린다.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타인이 무엇을 보는 지에 관해서는 신경을 켜두어야 하지만, 타인이 보아야 할 것만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자신이 완전히 비워지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럼 더는 여자아이를 그리지 않겠지.

그렇다고 그가 그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할 때 A TO Z의 작은 집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처럼.

 

언제나 중심은 자신이었으므로,

언제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므로,

살아있는 한 모든 인간은 세상을 보고 있을 것이므로,

세상을 보는 눈에 고갈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그는 언제나 창을 통해 세상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본 세상 그대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운 모습의 세상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거울처럼 비춰 줄 것이다.

 

그가 빨리 바닥까지 비워지기를 기대한다.

다음에 그가 볼 세상이 궁금하기 때문이다.